日 대지진 피해지역 중고교야구선수들, 美 메이저리그 전설에게 코치 받던 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굿 잡” 美의 따뜻한 응원… 日 아이들 희망을 던졌다

칼 립켄 주니어 직접 지도 17일 오후 미국 메릴랜드 주 애버딘 시 양키스타디움 야구장에서 칼 립켄 주니어 씨(오른쪽)가 대지진 피해 지역 출신인 일본인 학생들에게 야구 지도를 하고 있다. 애버딘=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칼 립켄 주니어 직접 지도 17일 오후 미국 메릴랜드 주 애버딘 시 양키스타디움 야구장에서 칼 립켄 주니어 씨(오른쪽)가 대지진 피해 지역 출신인 일본인 학생들에게 야구 지도를 하고 있다. 애버딘=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더 빨리 움직여(Faster)!”

따가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17일 오후 미국 메릴랜드 주 애버딘 시에 위치한 양키스타디움 야구장. 일본 남녀 선수 16명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이가 14∼17세로 중고교에 다니는 이들은 3월 동일본 대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지역 출신. 가족을 잃거나 집이 파손되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지만 이날 양키스타디움에 선 이들의 얼굴에 그늘은 없었다.

학생들을 지도한 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21년 동안 프로생활을 하다 2001년 은퇴한 칼 립켄 주니어(51). 1981년부터 오리올스에서 프로생활을 한 유명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이다. 그는 이곳에서 ‘립켄 청소년 야구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82년부터 1998년까지 2632경기에 연속 출장해 ‘철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립켄으로부터 직접 훈련을 받는 게 일본 청소년들은 마치 꿈을 꾸는 듯 즐거워보였다. ‘굿 잡(잘했어)’이라는 립켄의 말에 얼굴이 활짝 펴졌다.

리쿠젠타카타 시의 히로타 중학교 2학년생인 도우마 사시키 군(14)은 “연습하는 방식이 딱딱하고 규율에 엄격한 일본과는 많이 다르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연습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진해일(쓰나미)이 몰려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4번이나 피신을 했다는 다카히로 이케타 군(17·후쿠시마 현 후타바 고교 2년)은 “고향에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나 혼자 훈련에 참가하게 돼 가슴이 아프다”며 “여기서 배운 스윙 폼을 귀국해서 꼭 가르쳐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들을 인솔하고 온 겐지 후마가시 리쿠젠타카타 시교육위원(44)은 “코치나 스태프가 지진 피해 등 우울한 얘기는 되도록 하지 않게 배려했다. 대신 야구를 통해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했다. 아이들이 상급 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야구팀에서 탈퇴하려는 선수가 많은데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후 계속 선수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며 고마워했다.

립켄은 2007년부터 미국 국무부 스포츠 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은 미 국무부가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남녀 학생 8명씩 16명과 코치 4명을 8일부터 23일까지 미국에 초청한 데 따른 것.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일본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스마트 외교’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클린턴 장관은 앞서 이들을 직접 국무부 청사로 초청해 사진촬영도 하며 격려했다. 그는 “미국인은 대지진으로 황폐해진 나라를 재건하는 일본인들에게 강한 지지와 연대감을 갖고 있다”며 “스포츠는 양국을 결속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립켄은 일본 정부 초청으로 11월 도쿄와 쓰나미 피해 지역을 방문한다. 그는 “내 경험을 아이들에게 전수해 훌륭한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다”며 “야구를 통해 아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즐거운 생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가 마련한 ‘스포츠 방문자’ 프로그램에는 2003년 이후 50여 개국에서 학생 700여 명이 참가했다. 자연재해 등 어려움을 당한 나라들에 단지 물자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역경을 극복하도록 해 외교의 지평을 한 단계 높이는 미국 스마트 외교의 현장이었다.

애버딘(메릴랜드 주)=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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