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용등급 사상 첫 강등]국내경제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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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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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풍에 약한 한국 경제… ‘돈줄 조여 물가잡기’ 더 힘들어져

《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되면서 한국 경제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세계 경제가 동반침체 위기에 빠져들면서 대외 변수에 취약한 한국이 받는 충격의 강도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패닉’ 상태의 주식시장, 원-달러 환율의 급반등(원화가치는 하락) 등 금융시장 전반이 불투명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물가 상승, 수출 위축으로 국내 경제 회복도 한층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
○ “불확실성이 증시 지배” vs “예고됐던 일” 의견 갈려


‘2,400까지는 오를 수 있다’ ‘2,000이 바닥이다’ ‘1,900도 장담할 수 없다’….

최근 일주일 새 바뀐 증권사 투자전략가들의 낯 뜨거운 전망들이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같은 악몽이 반복될지를 걱정하면서도 ‘위기는 없다’ ‘아니다’를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2일부터 나흘 동안 10% 이상 추락해 탈진한 주식시장에 미국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메가톤급 폭탄이 터진 탓이다. 전문가들은 “일시적 반등이 있더라도 증시가 안정을 찾기까지 적어도 3개월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휴일 긴급 경제점검회의 정부는 일요일인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한국경제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점검했다. 이날 정부는 “시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세계경제의 침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굳은 표정의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가운데)과 이주열 한국은행 부총재(왼쪽),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오른쪽). 과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휴일 긴급 경제점검회의 정부는 일요일인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한국경제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점검했다. 이날 정부는 “시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세계경제의 침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굳은 표정의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가운데)과 이주열 한국은행 부총재(왼쪽),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오른쪽). 과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코스피가 나흘새 228.56포인트 떨어지는 동안 시장을 지배한 것은 공포 심리였다. 여기에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얹어진 만큼 혼란과 불안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석원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불확실성의 구름이 걷히려면 연말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때까지 1,900 선이 일시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자꾸 떠올리고 있다. 위기의 원인과 배경은 다르지만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는 건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충격이 예상외로 작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비관 일색이던 2008년 금융위기 직후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신용등급 하락은 예고됐던 일이며 이미 주가에도 반영됐다”고 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도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는 측면에서 되레 긍정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 유럽, 중국 등 3대 변수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경기회복 지표, 중국 물가 안정, 스페인·이탈리아의 국채금리 하락 등 구체적인 호재가 확인돼야 증시가 반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깝게는 9일 중국의 7월 소비자 및 생산자 물가지수 발표가 예정돼 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 환율 널뛰기… 美 추가 양적완화땐 원화 강세 돌아설듯


“하반기에 원-달러 환율이 1020∼1030원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1000원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7월 말까지만 해도 이 같은 전문가들의 환율 전망은 맞는 듯했다.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은 경상수지와 무역수지 흑자 폭 확대, 국내 기업의 실적 호조, 코스피 상승 속에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연일 하락 압력을 받으며(원화가치는 상승) 연 저점 경신을 반복했다.

하지만 미국의 부채증액 협상 타결 이후 세계경제 침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환율은 오름세로 돌아섰다. 환율은 2∼5일 4거래일 동안 1050.80원에서 1067.40원으로 16.60원 급등했다. 향후 환율의 방향성을 점칠 수 없는 짙은 안개국면이다.

일단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환율은 이번 주 내로 1080원대 진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투자자들이 당장은 안전자산인 달러 매집에 나서고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 매도가 이어질 것으로 본 때문이다. 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의 패닉은 공포 심리 때문”이라며 “아시아국가에서는 자국통화 가치는 떨어지고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흐름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충격이 가시면 환율 상승세는 꺾일 가능성이 있다. 국가신용등급 하락에도 미국의 7월 신규 고용이 11만5000명에 이르는 등 일부 경제지표가 회복세를 보였고 유럽중앙은행(ECB)의 스페인 이탈리아 국채 매입 결정, 이탈리아의 재정 개혁안 발표 등이 이어진 것이 이 같은 판단의 근거다. 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으면 원화 등 신흥국 통화가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미 신용등급 하향에 따른 불안 심리가 진정되고, 연준이 추가적인 완화정책을 내놓을지가 단기적 변수”라며 “당분간은 미 경제를 둘러싼 불안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인플레 조짐 있지만 “경제침체 우려” 금리 못올릴 판


올 들어 고물가 방어에 전력을 투구하던 우리 경제에 최악의 변수가 등장했다. 얼마 전까지 기상악화와 국제원자재 가격, 그에 따른 기대 인플레이션이라는 1차 방정식만 풀면 됐지만 이제는 글로벌 경제 불안과 달러화 체제 균열 조짐에 따른 달러화 가치 하락, 세계적 통화량 팽창이라는 ‘3차 방정식’이 나타난 것이다. 사면초가 상황에 몰린 셈이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요동치는 것과 비교하면 물가 상황은 그나마 괜찮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9월부터는 다소나마 물가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무엇보다 물가불안의 근본 처방책인 금리인상을 할 여지가 좁아졌다. 물가를 진정시키려면 금리를 올려 시중에 풀린 돈줄을 조여야 하는데 금융시장이 얼어붙은 마당에 금리를 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신석하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동향팀장은 “성장세 둔화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물가관리가 급해도 대외여건을 감안하면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으로서는 금융시장만 보면 금리를 내릴 상황이지만 물가를 놓고 보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당장 11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동결이 유력하다. 지금으로서는 물가보다 금융시장에 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물가는 급격히 폭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대세 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위기와는 별개로 상반기 내내 억눌렀던 공공요금이 대중교통요금, 상하수도요금 등을 중심으로 들썩이고 있고 생활필수품이나 먹을거리도 국제원자재 가격이나 기대인플레이션에 따라 언제라도 오를 태세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글로벌 위기가 다시 닥치면서 거시정책과 미시정책 모두 실효성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며 “각종 비용 상승 요인을 감안한다면 하반기 물가 고공 행진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 투기세력, 달러 대신 원유 사재기땐 또 ‘오일쇼크’


미국의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 우려로 세계경제가 요동치면서 한국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경기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면 수출로 먹고사는 국내 기업에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강화한 덕분에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주요 기업들은 침과대단(枕戈待旦·창을 베고 자면서 아침을 기다린다)의 자세로 위험 요소를 살피면서도 “투자는 줄이지 않겠다”며 정면 돌파를 준비하고 있다.

‘검은 금요일’ 직후인 6일과 7일 이틀 동안 주요 기업 가운데 비상대책팀을 꾸리거나 주말을 반납하는 등 급박하게 움직인 곳은 거의 없었다. 2008년 겪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기업들의 위기대응 방식을 ‘비상 수습’에서 ‘상시 대비’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환율과 유가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SK이노베이션은 환대책반을 상설 운영하고 있고, SK그룹은 경영계획 수립 주기를 연간이 아닌 1, 2개월 단위로 바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평소 여러 준비를 통해 경쟁력을 갖춰왔기 때문에 이번 일 때문에 비상회의 등을 별도로 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위험(리스크)이 더 커진다면 준비된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응계획)에 따라 시나리오 경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 국면에도 대기업들은 연초에 계획했던 대규모 투자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차는 2008년에 경쟁사들과 달리 생산과 마케팅 비용을 늘려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수조 원 규모의 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들은 국제유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로화나 위안화 등 통화 채널을 다변화하면서 환율 영향력을 줄여온 대기업들에도 여전히 유가 상승은 큰 원가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국내 기업들은 이미 상반기에 리비아 사태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고유가 쓰나미’를 두 차례나 겪었다. 미국의 경기침체로 원유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국제유가는 당장 급락했지만 투기세력이 설치면 다시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투기 세력이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투기 세력이 달러화 대신 원유 매집에 나설 경우 국제유가는 금값처럼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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