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여성 운전금지’ 더는 못참겠다”

  • 동아일보

시동걸린 사우디 여성들 車몰며 시위앰네스티 “여성에 도로 열어주라”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차를 몰고 거리에 나왔다. 보통의 국가라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이 나라 여성들에게는 감옥에 갈 것을 무릅써야 하는 매우 대담한 행동이다. 사우디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 지극히 보수적인 남성중심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기 있는 일부 여성이 17일 ‘운전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날 시위는 지난달 마날 알셰리프(32)라는 사우디 여성이 유튜브에 자신의 운전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올렸다가 체포되면서 예고됐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 규정에 반발하는 여성들이 이날을 기해 집단행동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사우디에서 여성이 차를 타고 이동하려면 개인운전사를 고용하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

이번 시위는 정해진 시간에 한 장소로 모이는 게 아닌, 일부 여성이 산발적으로 각기 다른 장소에서 운전대를 잡는 형태로 진행됐다. 시위를 원천봉쇄한다는 방침을 밝힌 경찰들의 눈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날 직접 운전을 하며 거리로 진출한 여성들은 트위터 등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특별했던 ‘경험’을 공유했다. 컴퓨터 전문가인 마하 알카타니는 “오늘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45분 정도 운전해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 거리로 직접 나갔다 돌아왔다”고 말했다. 칼럼니스트인 타우피크 알사이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내 아내가 직접 차를 몰고 가게에 다녀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썼다.

이날 시위의 참가 인원이나 경찰에 체포된 여성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사우디의 인권운동가들은 국왕이 이 규정을 철폐할 때까지 비슷한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여성들의 이번 집단행동으로 그동안 중동 민주화 열풍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사우디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여성들의 운전을 계속 단속하자니 미국 등 서방의 개혁 압력에 직면하게 되고, 이 규정을 없애자니 성직자 등 보수 집권층의 반발이 뻔하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16일 “사우디 정부는 여성을 ‘2등 국민’으로 취급하지 말고 왕국의 도로를 이들에게 열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주초에는 미국 워싱턴에서도 여성들이 차를 몰고 사우디 대사관에 모여 시위를 벌이는 등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에도 사우디에서 약 50명의 여성이 차를 직접 몰고 시위를 벌여 경찰에 의해 구금되고 여권이 몰수됐다. 사우디의 한 여성 인권운동가는 “오늘 시위는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우린 후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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