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2월 6일 독일 뮌헨 공항에서 이륙 중 추락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세기 잔해. 이 사고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7명이 즉사하고, 1명이 2주 뒤에 숨졌다. 사진 출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페이지
영국 중서부에 있는 맨체스터는 수도(首都)도 대도시도 아니다. 인구는 40만 명 정도다. 그러나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이 도시 이름을 안다.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때문이다. 이 팀의 홈경기에는 평균 7만5000명이 찾아온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최근 7년 연속 이 팀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구단’으로 선정했다. 자산 평가액은 약 2조8000억 원. 나이키 같은 세계적 브랜드부터 서울시까지 다양한 26개 기관이 공식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22일 리그 우승을 최종 확정하면서 잉글랜드 리그 최다(19회) 우승팀 영예도 차지했다.
그런데 이 영광의 씨앗은 사실 참담한 비극에서부터 잉태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에서 ‘뮌헨 참사’를 전설의 시작이라고 소개했다. 1958년 2월 6일 이 팀 선수를 태운 비행기가 독일 뮌헨 공항에서 추락했다. 사고로 팀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숨진 이들은 평균 만 24.6세였다.
당시 맨유는 맷 버스비 감독(사진) 이름을 따 ‘버스비 베이브’라 불렸다. 힘 있고 투지 넘치는 이들의 축구는 제2차 세계대전 후유증에 시달리던 영국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었다. 참사가 빚어진 날도 유고슬라비아에서 유럽컵(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을 확정짓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맨유는 사고 후 이를 단지 비극으로 남겨선 안 된다고 다짐했다. 문호를 활짝 열고 전 세계에서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계속 영입해 키웠다. 팀의 발전이 죽어간 젊은 선수들의 넋을 달래는 길이라고 믿은 것이다.
올해 37세인 라이언 긱스(아일랜드)가 이 팀에서 처음 뛸 때는 17세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쌍둥이 형제 라파엘과 파비우 다 시우바(브라질)는 18세 때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데이비드 베컴은 19세 때 이 팀에서 데뷔했다.
결실을 보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맨유는 1968년 유럽컵을 차지하며 한을 풀었다. 버스비 감독은 뮌헨 참사에서 함께 살아남은 보비 찰턴을 제일 먼저 끌어안았다.
맨유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뮌헨 참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2008년에는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에서 50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타임은 “뮌헨 참사를 계속 강조하는 것은 비극을 로맨틱하게 꾸미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젊은 생명력”이라며 “뮌헨 참사가 음(陰)이었다면 그 전설은 양(陽)”이라고 보도했다.
1986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부임은 화룡점정이었다. 선수를 질타할 때 머리칼이 곤두설 정도로 혼쭐낸다고 해서 ‘헤어드라이어’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했다. 타임은 퍼거슨 감독이 영입한 대표적 선수로 한국의 박지성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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