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라덴 사살 이후]속속 드러나는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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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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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 결혼-자녀 20여명… 첫 부인은 사촌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을 계기로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그의 사생활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후의 순간’에 빈라덴의 부인 중 한 명이 총탄을 막아서는 인간방패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여인들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졌다. 일부 외신은 총에 맞아 숨진 여인이 빈라덴의 가장 젊은 부인인 아말 알사다(20대로 추정)라고 보도했다. 이번 작전에서 빈라덴의 또 다른 부인 2명과 자녀 6명이 체포됐다.

빈라덴은 5번 결혼하고 그중 한 명과는 이혼했으며, 자녀는 20여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4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지만 평균 남성에 비해서는 많은 부인을 둔 것이다. 빈라덴은 대학 재학 시절 “일부다처제를 실천에 옮겨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빈라덴은 17세 때인 1974년 시리아인인 15세의 사촌 나즈와 가넴과 처음 결혼해 7남 4녀를 낳았다. 이 첫 번째 부인은 일에 빠져 사는 남편 곁에서 은둔과 의무의 삶을 살았다. 빈라덴은 1982년 아동심리학 박사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일곱 살 연상의 움 함자와 두 번째 결혼을 해 아들을 하나 뒀다. 같은 해 빈라덴은 아랍어 문법학 박사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움 칼리드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96년 이혼한 네 번째 부인 움 알리와는 “남편에게 이야기하려고 하면 화만 내서 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001년 결혼한 마지막 아내 아말 알사다는 2002년 예멘의 친정집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알카에다 관련 정보를 얻으려는 미국이 벌인 일이었다. 당시 1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아말은 빈라덴의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들은 보안상의 이유로 한집에 같이 살지 않았다. 빈라덴은 한두 달에 한 차례씩 모든 부인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었다.

부인과 아이들에게 빈라덴은 철저한 꾸란주의자였다. 빈라덴에게 자살폭탄 테러를 강요받기도 한 넷째 아들 오마르는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적들을 증오했다”고 말했다. 엄격한 규율을 강조한 빈라덴은 가족과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아이들을 자주 때렸다고 오마르는 말했다. 형수인 카르멘은 ‘인사이드더킹덤’이란 책에서 “빈라덴은 사막의 열기로 힘들어하는 갓난 아들에게 젖병을 물리지 못하게 하고 숟가락으로 떠먹이라고 할 정도로 꾸란에 명시된 문구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빈라덴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들여 일일이 교육에 관여했다.

오마르에 따르면 빈라덴의 취미는 사치스럽고 서구적이었다. 황금빛으로 도장한 메르세데스벤츠 등 고급 승용차와 스피드 보트를 사들였다. 첫 번째 부인 나즈와는 “남편이 사막까지 과속으로 드라이브를 한 뒤 차에서 내려 오랫동안 걷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고 말했다. 서양호박과 망고를 즐겨 먹었고 항상 차에 설탕 2개를 넣어 마셨다. 영국 BBC 라디오를 자주 듣고 꽃을 좋아했던 그는 암살 기도를 피해 수단에 숨어 살 때도 해바라기를 키웠다.

어린 시절 빈라덴은 TV 서부극 ‘보난자’를 즐겨 보던 소년이었다. 그에게 과학을 가르쳤던 교사는 그를 수줍음 많고 실수를 두려워하는 학생으로 기억한다. 10대 때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된 뒤 더는 카우보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고 서구식 의복을 거부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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