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필사의 구조 현장… 공식 사망-실종 2만명 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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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할머니-16세 손자, 무너진 집서 9일만에 ‘기적의 생환’

동일본 대지진 발생 9일 만인 20일 오후 80세 할머니와 16세 손자가 구조됐다. 무너진 집 안에 갇힌 채 냉장고에 남은 우유 등으로 무려 217시간을 버틴 것이다. 모두 의식이 또렷한 상태였다.

이날 오후 4시경 미야기(宮城) 현 이시노마키(石卷) 시 가도노와키(門脇) 마을에서 생존자 수색활동을 하던 경찰의 귀에 “도와 달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부서진 집의 지붕 위에 위태롭게 올라앉은 10대 소년이 보였다. 즉시 구조대원이 출동했고 이들은 인근 적십자병원에 헬기로 이송됐다.

아베 스미(阿部壽美) 할머니와 고교 1년생인 아베 진(阿部任) 군은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덮친 11일 오후 목조주택의 2층 부엌에서 점심을 먹다가 폭삭 내려앉은 집 안에 꼼짝없이 갇혔다. 집은 강에서 가까워 처참하게 무너졌다. 지붕과 벽기둥이 다 무너진 와중에도 약간의 공간이 생겨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사방이 막혀 밖으로 나올 수는 없었다. 진 군은 12일 형에게 휴대전화로 “무너진 집에 갇혔지만 무사하다”고 알렸고, 온 가족이 찾아다녔지만 집 자체가 쓰나미에 멀리 휩쓸려 나가 찾을 수 없었다. 휴대전화도 끊어져 버렸다. 다행히 냉장고 안에는 요구르트와 우유 2통, 물, 빵, 구운 김이 약간 남아 있었다. 손자는 넘어진 냉장고와 옷장 사이에 발이 끼여 꼼짝할 수 없게 된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건네주며 버텼다. 9일간 필사적으로 노력한 끝에 간신히 틈을 만들어 지붕 위로 오를 수 있었다.

구조 당시 진 군은 체온이 28도로 저체온 증세를 보였으며 왼쪽 발목이 동상에 걸렸다. 이불로 온몸을 휘감고 있던 할머니는 구조대원과 눈이 마주치자 “다행이에요”라고 말을 건넬 정도로 의식이 또렷했다. 탈수증세가 조금 있을 뿐 상처도 없었다. 병원으로 달려온 진 군의 아버지(57)는 “반드시 살아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실종자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위대한 것이라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피해 지역에서 시신이 연일 발견되고 있지만 신원 미확인으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유족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이와테(巖手) 현의 경우 시신 2223구 중 신원이 확인된 것은 65구에 불과하다. 사망자 90% 이상이 익사했기 때문에 지문이 사라지고 치아를 통한 확인도 쉽지 않다. 한 30대 남성은 “아내의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차에 기름이 없어 갈 수도 없다”며 통곡했다.

한편 이번 대지진의 공식적인 사망, 실종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 경찰은 20일 낮 12시 현재 8133명이 숨지고 1만2272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1995년 한신 대지진 당시 사망, 실종자는 총 6434명이었다.

도쿄=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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