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경제대국 일궜는데 약 없어 숨지다니” 서러운 日 노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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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층 ‘2차 재난’… 젊은이 떠난 어촌마을서 쓰나미 직격탄 맞고대피소-병원 도착해도 치료 못받아 시름시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8일로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지역에선 ‘새로운 재난’이 발생하고 있다. 엄청난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에서는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대피소와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와 식량 등을 받지 못해 숨지는 ‘2차 재난’ 피해자(재해관련사)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인 계층에서 재해관련사가 속출하고 있다. 혹독한 태평양전쟁 때도 살아남아 1인당 GDP 4만 달러의 세계 경제대국을 만들어낸 이들이 어처구니없게도 약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져 간다. 18일 일본 정부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도호쿠(東北) 지방의 이재민 38만 명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심신이 피폐해진 노인들이 수십 년 살았던 고향마저 떠나야 한다면 고난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福島) 현 미나미소마(南相馬) 시의 한 병원에서는 18일 환자 2명이 치료약이 없어 숨졌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20∼30km 권역에 있는 이 병원에는 노인 180여 명이 입원해 있지만 15일 옥내 대피 지시가 떨어진 뒤 의약품을 공급받지 못했다. 이와테(巖手) 현 가마이시(釜石) 시의 병원에서도 이날 정전으로 가래흡입 장치가 멈추면서 70∼90세의 폐렴 환자 8명이 숨졌다.

미야기(宮城) 현 이시노마키(石卷) 시 이시노마키항만병원 4층 식당과 복도는 노인 환자들로 가득하지만 의료진의 10%가 넘는 40명이 실종돼 치료와 간병이 쉽지 않다. 의료진은 “약도 음식도 치료설비도 부족해 중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쑥대밭이 된 도호쿠 지방 어촌들은 청·장년층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면서 홀로 남은 80, 90대 노인도 적지 않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쓰나미 경보를 듣고 대피소로 향했지만 이내 뒤처져 휩쓸리거나 아예 집에 남아 목숨을 운명에 맡긴 경우도 많았다.

대피소의 노인들도 사정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전기와 가스가 끊어지고 난방용 기름은 부족하며 음식과 물, 약품과 의료진의 손길이 모자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도호쿠 지방은 요즘 밤에는 영하로 떨어질 정도로 춥지만 담요와 옆 사람의 체온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후쿠시마 재해대책본부는 원전 반경 20km 내의 의료기관에서 환자들을 대피소로 옮긴 14∼16일 이송 중에 2명, 이송 직후에 19명이 잇따라 숨졌다고 17일 발표했다. 악조건하에서의 장시간 이동으로 쇠약해진 데다 대피소에서도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케 살아남았다 해도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미야기 현 미야코(宮古) 시의 70대 여성 오카시 게이코 씨가 혼자 살던 조그만 집은 폭삭 주저앉았다. 도쿄 등지에서 사는 자식들에게서 당장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은행에 맡기지 않고 장롱 속에 고이 모아둔 얼마 안 되는 돈도 찾을 길이 없다. 이들이 겪을 심리적 고통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가족, 돌봐주는 사람, 공동체와의 연대를 상실한 노인은 ‘버림받았다는 상심’과 자기소외를 심하게 느낀다”며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기자 sya@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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