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지진]‘제2 체르노빌’ 가능성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7일 1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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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악화되는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제2의 체르노빌'에 이를 가능성이 있을까.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아직 진행 중인 시점에서 섣불리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일단 분명한 것은 이 둘은 사고 성격과 원자로 구조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는 가동 중이던 원자로가 운영자의 과실로 출력이 비정상적으로 급상승, 원자로 내부에서 증기와 수소 등이 대폭발을 일으켜 노심의 핵물질을 사방으로 흩뿌린 것.

반면 문제의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1~3호기는 지진ㆍ쓰나미 이후 가동은 중단됐으나 냉각수 공급 기능이 마비돼 원자로 내의 열을 식히지 못한 결과 노심의 핵물질이 가열돼 녹아내리는 상황이다.

즉 체르노빌 사고는 한 마디로 원자로의 폭발인 데 비해, 원자로 1~3호기는 원자로의 중심인 노심이 녹아내리는 노심용해가 진행 중이다.

폭발은 핵물질을 공중으로 흩날려 체르노빌의 경우 기류를 타고 1천㎞ 이상까지 퍼뜨리는 등 대기를 통한 광범위한 오염으로 이어진다.

반면 노심용해는 핵연료가 녹은 수천℃ 이상 초고온의 핵물질 용액이 원자로 바닥을 뚫고 땅으로 흘러들어 토양과 지하수 등을 오염시키는 것이 차이다.

원자로 구조에서도 양자는 차이가 커 후쿠시마 제1원전의 비등수형 경수로(BWR)는 두께 1m 이상의 강철과 콘크리트로 이뤄진 강력한 격납용기로 보호되는 반면, 체르노빌 사고를 일으킨 흑연감속로(RBMK)는 격납용기가 없어 폭발에 매우 취약하다.

실제로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도 격납용기 밖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으나 격납용기가 노심을 보호했기 때문에 체르노빌처럼 폭발이 방사성 물질의 대량 분출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성격은 체르노빌 사고보다는 1957년 스리마일섬 사고에 조금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스리마일섬 사고와 달리 문제를 일으킨 원자로가 3개 이상이고, 격납용기가 일부 파손된데다, 사용 후 연료봉의 방사성 물질 유출 문제까지 더해진 결과 사고의 심각성 면에서는 스리마일섬 사고를 한창 뛰어넘는 것으로 보여 우려가 크다.

이와 관련해 각국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심각성이 스리마일섬 사고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으나 체르노빌처럼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7등급으로 발전할지 여부에 대한 전망은 서로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로이터 통신과 미국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유엔 방사능영향과학위원회(UNSCEAR)의 책임자 맬컴 크릭은 이번 사고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나 체르노빌에서는 노심 전체가 폭발했고 대량의 열과 대기 높이 날아간 것들이 많이 있었다"며 '제2의 체르노빌'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영국 존 틴들 핵연구소의 로런스 윌리엄스 핵안전학 교수도 "현 시점에선 폭발력으로 작용하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며 "핵연료가 그냥 녹거나 분해, 가열돼 스리마일섬 사건처럼 함몰돼 하나의 덩어리로 무너져 내릴 것"이라며 체르노빌식 폭발 가능성을 부정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맬컴 그림스턴도 "핵분열이 중단된 지 거의 5일이 지났고 방사성 요오드의 수준도 애초의 3분의 2 정도밖에 안 되며, 방사선 수준이 높지만 오래 못 가는 다른 물질들은 지금이면 다 사라졌을 것"이라며 비슷한 전망을 제시했다.

반면 스리마일섬 사고 당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위원장을 지낸 빅터 길린스키는 후쿠시마 원전의 "다른 원자로 격납용기가 뚫린 점을 감안하면 사용 후 연료봉 저장 수조에 물이 없을 경우 실제 방사선 유출 정도는 체르노빌 범주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핵군축 연구기관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도 사이트에서 이번 사고가 "더 이상 4등급으로 볼 수 없다"며 "6등급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운이 나쁘면 7등급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핵무기 확산방지 단체인 플라우셰어스 펀드의 조 시린시온 회장도 "스리마일섬 사건을 한창 넘어서서 체르노빌 사건 쪽으로 들어서고 있다"며 "최소 5등급, 아마 6등급이며 7등급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린피스의 국제 핵 캠페인 책임자인 잰 베라넥은 "최악의 경우에도 방사성 구름이 대기에서 그리 멀리 가지 않을 것"으로 "이는 세계에는 좋지만 일본에는 나쁜 소식"이라며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 지역이 일본에 국한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발전소 인근 일부 지역이 심각한 세슘 등 오염으로 체르노빌처럼 최소 수십년 간 거주 불가능하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의 톰 코크란 수석과학자는 이번 사고가 "스리마일섬보다는 조금 나쁘지만 체르노빌과는 거리가 있다"며 다만 노심의 녹은 핵물질을 격납용기가 차단할지 여부 등 불확실한 변수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간 노심용해가 벌어질 확률이 원자로 개당 1만년 중 한 차례로 추산돼 왔으나 실제로는 스리마일섬, 체르노빌에 이어 이번까지 지난 30년간 500개가 안되는 원자로 중 세 차례나 발생했다며 이는 좋은 통계수치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편 문제의 원자로와 유사한 원자로에서 29년간 일해 온 미국 전문가 아니 건더슨은 일본이 연료봉 저장 수조에 물을 퍼붓고 있는 것에 대해 "본의 아니게 임계상태를 만들어 원자로 내부에서와 비슷한 핵반응을 수조에서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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