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리포트]“사회 이익이 나의 이익”… 英미디어기업 ‘착한 경영’ 나섰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17 03:00수정 2010-09-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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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는 다양한 장르의 ‘창조산업’을 장려하고 있다. 인기 클래식 연주회 행사인 BBC 프롬스 가운데 아마추어 가족들이 참가하는 ‘가족 음악 인트로’. 사진 제공 BBC 크리스 크리스토둘루
사회와 경제, 환경을 3대 축으로 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경영이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갈수록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런 CSR 실천과정과 주요 쟁점을 기사로 다뤄온 미디어기업은 역설적으로 CSR에 대체로 무관심한 편이었다. 미디어산업이 크게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영국에서도 주요 언론사가 여기에 눈을 뜬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6월 7일 영국 BITC(Business in the Community)가 발표한 CR(기업책임) 지표에 오른 111개 기업 가운데 미디어기업은 단 2곳뿐이었다.

그럼에도 주요 영국 미디어기업은 몇 년 전부터 저성장과 기후변화,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 앞에 CSR 경영을 해법의 하나로 여기고 이를 끌어안는 추세다.

2004년 BBC, ITV, SKY, 가디언, 피어슨 등 12개 주요 미디어그룹은 ‘미디어 CSR 포럼’을 만들고, KPMG를 통해 미디어기업이 직면한 CSR 쟁점을 파악하기 위한 이해관계자 조사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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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미디어에만 있는 독특한 쟁점을 분류해냈다. 창의성 중시, 창의적 독립성, 투명하고 책임 있는 편집 방침, 표현의 자유, 불편부당한 보도 및 제작, 사회 다양성 반영, 정보 해독력 등이 그것이다. 이는 곧 방송 프로그램, 신문·잡지 기사 등 미디어 콘텐츠가 독자나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말하는 ‘브레인 프린트(brain print)’와 연결된다.

미디어 CSR 포럼의 조사 이후 CSR 경영을 자사의 핵심 전략으로 끌어들이며 연례 보고서를 펴내고 있는 미디어 가운데 가디언과 BBC는 각각 신문과 방송 부문의 대표주자였다. 6월과 7월 두 미디어회사의 CSR 담당 책임자를 만나 주요 쟁점을 들어봤다.

:: 브레인 프린트(brain print) ::

브레인 프린트(brain print)미디어 콘텐츠가 독자나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말하는 용어다. 전 산업 분야의 공통적인 CSR 측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온 유엔 협력기관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는 최근 브레인 프린트의 가이드라인을 새로 마련하기 위해 컨설팅 작업에 착수했다.

▼ 탄소배출 줄이려 국내선 비행기 출장금지 ▼

세계 최대 공영방송사인 BBC는 국민이 낸 시청료로 운영되며 독립기관인 BBC 트러스트의 관리를 받는다. BBC는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사기업이 아니지만 상품 및 서비스 구매에 연간 1조 원 이상을 쓰는 ‘큰손’이며, 세계를 상대로 자사 프로그램과 관련 잡지 등을 파는 자매회사 BBC 월드와이드를 거느리고 있다.

BBC가 CSR 경영에 힘을 쏟는 이유는 가디언과 비슷하게 ‘명성과 신뢰 높이기’이지만 그 배경은 다르다. BBC의 CSR는 공익에 기여하는 기업에 대한 일종의 허가장인 ‘로열 차터(Royal Charter)’에 정해진 공공목표를 따른다. 이 목표는 지속가능한 시민정신과 시민 사회, 교육 및 학습 장려, 창의성 및 문화적 우수 장려, 영국과 세계를 잇기 등으로 요약된다.

이런 목표에 근거해서 BBC는 CSR에 대한 인간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정신병에 대한 사회의 금기 등을 깨고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캠페인, 윤리적 방식으로 제작한 물품이나 프로그램 구입 등이 대표적 사례다.

2010년 BBC는 BITC의 CR 지표 가운데 두 번째 등급인 ‘플래티넘’ 등급을 받았다. 2003년엔 CSR 센터를 설립하고 이듬해부터 기업의 지역 커뮤니티 투자에 대한 성과를 조사하고 알리는 데 활용하는 런던벤치마킹그룹(LBG)에도 참가하고 있다. LBG는 BBC의 2008년 커뮤니티 관련 활동의 가치가 약 430억 원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BBC의 CSR 전략 수립 및 이행은 아웃리치(outreach·봉사, 지원)팀이 전담하며 프로그램 제작 등 편집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팀을 이끄는 요게시 초한 CR 담당 상임고문은 BBC가 CSR 전략을 도입하기 전과 후의 가장 큰 변화로 ‘평판’을 꼽았다.

“CSR 부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BBC 전체의 평판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과거엔 ‘어떤 영역의 사람들에게는 과도하게 많은 서비스를 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았지요. CSR는 바로 이런 비판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었습니다.”

외부의 평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해관계자의 평가다. BBC는 2년마다 수천 명의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CSR 평가 조사를 실시해 구체적 전략이나 실천상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공영방송이다 보니 내부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행동수칙 등도 흥미롭다. 예컨대 BBC 직원은 잉글랜드 지역 내에서 업무상 이동할 경우 비행기를 이용할 수 없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다는 것이 이유다. 피치 못하게 비행기를 탈 경우 분명한 이유를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BBC가 공영방송이라는 점이 CSR 이행과정에서는 장애로 작용하기도 한다. “BBC의 제작 방침은 불편부당이어서 기후변화 등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정치적 견해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외부에서 보면 한계로 인식됩니다. 한편으로 더 많은 CSR 예산과 담당자, 경영진의 더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가디언은 CSR의 일환으로 2007년부터 우간다에서 카틴 개발 프로젝트를 바클레이스은행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독자와 바클레이스은행이 기부한 46억 원으로 소외된 카틴지역을 개발하는 이 프로젝트는 가디언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보도되고 있다. 물을 긷고 있는 카틴 지역 사람들. 사진 제공 가디언
▼ 기부금 모금 통해 아프리카 낙후지역 지원 ▼

영국의 신문 기업 가운데 CSR경영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가디언은 ‘스콧 트러스트’ 재단이 소유권을 가진 미디어기업이다. 2003년부터 해마다 사회 경제 환경 분야의 활동을 담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공개한다. 가디언의 2009∼2010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검증한 검증기관 ‘투 투모로’는 가디언의 CSR 가치가 기업 전반에 확실히 구축돼 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이 CSR 경영에 힘쓰는 이유는 한마디로 ‘가치’다. 90여 년 전 가디언의 편집장을 지낸 C P 스콧은 가디언의 가치를 “정직, 정결, 용기, 공정, 독자와 커뮤니티에 대한 책임감”으로 꼽은 바 있다. 이런 가치는 지금 CSR를 실천하는 열정의 뼈대가 되고 있다. 조 콘피노 CSR 담당 편집이사는 가디언의 편집이나 상업적 문제도 모두 이 가치와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가 어디서 왔는지, 공장에서 쓰는 전기를 어떻게 줄일지, 지역 커뮤니티와는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도 모두 중요하지만 가디언에 더 중요한 문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편집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끄는 것입니다.”(조 콘피노 이사)

2007년부터 가디언은 CSR의 일환으로 우간다에서 카틴(Katine) 개발 프로젝트를 바클레이스은행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독자들과 이 은행이 기부한 46억 원으로 소외된 카틴지역을 개발하는 이 프로젝트는 가디언 웹사이트(www.guardian.co.uk/katine)에서 실시간으로 보도된다. 가디언은 이 프로젝트로 BITC 2010 코피 인터내셔널 어워드를 받았다.

“지속가능한 국제 개발이란 말은 너무 거창해서 대부분의 직원이 자신들의 생활과 연결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자선재단에 돈을 줄 망정 지속가능한 개발에 참여하려는 의지는 별로 없었지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가 더욱 의미 있습니다.”

CSR 실천과 관련해 가디언도 이익 추구가 목표인 여느 기업들과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콘피노 이사는 “미디어산업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CSR 쟁점을 주요 의제로 올리기가 쉽지 않고, 직원들의 이해도도 제한적이어서 심리적 장애가 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가디언은 먼저 지속가능성 쟁점과 개별 직원들의 행동 사이에 연결 고리를 만들고자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장애를 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산 편성에서 CSR 부문을 가장 우선시하는 안을 2007년 이사회에서 통과시켰고, 올해 3월엔 환경 경영 등과 관련된 CSR 비전을 담은 ‘파워 오브 텐(Power of ten)’을 발표했다. 가디언은 이를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한 약속’이라고 밝혔다.

BBC와 가디언의 사례에서 보듯 CSR는 이미 국경을 넘어서는 강력한 글로벌 이슈다. 한국의 미디어산업은 어떻게 CSR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초한 BBC 상임고문은 “우선 영국의 미디어 CSR 포럼 같은 전국적 포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리즈대 지속가능성 프로그램 매니저인 앤 탤런타이어 박사는 “BBC와 가디언의 사례에서 보듯 투명한 지배구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런던·리즈=정현상 차장 doppelg@donga.com

이 기사는 지난 1년간 한국생산성본부 후원으로 영국 리즈대에서 지속가능성 석사과정을 마친 신동아팀 정현상 차장의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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