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리포트] 美 전역 ‘동성결혼’ 끝없는 논쟁… 정치권도 교회도 ‘뜨거운 감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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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성애자 권익단체 ‘GLAD’에 실린 한 동성커플의 가족 사진. 동성커플들은 이성 결혼자에 비해 의료, 보험, 세금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GLAD
미국 동성애자 권익단체 ‘GLAD’에 실린 한 동성커플의 가족 사진. 동성커플들은 이성 결혼자에 비해 의료, 보험, 세금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GLAD
“애나, 최근 법원이 캘리포니아 주의 동성결혼 금지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난 개인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투쟁 중인 동성커플 친구가 있어요. 아이를 키우지 못하거나 의료 혜택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 유타 주 프로보에 살고 있는 데이비드 젠슨 씨(55)와 대학생 딸 애나 씨(22)가 최근 저녁 식사를 하며 나눈 얘기다. 그의 집은 한국에서는 ‘모르몬’(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으로 불리는 교회 바로 건너편에 있다. 주도(州都)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10만여 명의 이 도시에는 좀 넓은 공터가 있으면 교회가 있을 정도로 주민의 삶과 교회가 밀착돼 있다.

4일(현지 시간) 주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금지시킨 캘리포니아 주의 ‘프로포지션(proposition) 8’에 대한 미 연방법원의 판결은 미국 전역에서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평소 교회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보이스카우트 지도에 열성적인 젠슨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결혼이 한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며 “난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아이들이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는 커뮤니티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두 자녀는 ‘결혼은 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신앙을 위해 캐나다에서 이민 온 젠슨 씨와는 다른 의견을 밝혔다. 7월에 고교를 졸업한 샘 군(18)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직장에서 동성결혼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동성결혼이 어쩔 수 없는 추세라면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미국 내 종교그룹 가운데 어느 교단보다 동성결혼을 적극 반대해온 모르몬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판결이 나온 뒤 즉각 “유감스럽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교회는 ‘프로포지션 8’의 통과를 위해 열성적으로 자금과 인력을 지원해 왔고, 최근 이 자금 지원과 관련해 회계 보고를 지체했다는 이유로 5000여 달러의 벌금을 법원으로부터 선고받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와 달리 400여 명의 동성결혼 지지자들은 솔트레이크시티의 모르몬 성전이 있는 템플 스퀘어 지역에서 법원의 조치를 환영하는 행진을 벌였다.

“Will you remarry me?” “Yes.”

템플 스퀘어에 인접한 주 의사당 건물 앞에서 이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동성커플이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나눈 얘기다.

실제 미국 내 동성결혼 문제는 종교적 영향이 강한 유타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뜨거운 감자’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2000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거나 시민적 결합(civil union) 형태로 동성결혼에 비교적 관대하게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복음주의적 개신교의 영향이 강하고 각 주의 전통을 중시하는 미국의 경우 동성결혼 문제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은 워싱턴DC와 매사추세츠, 아이오와, 코네티컷, 버몬트, 뉴햄프셔 등 5개 주다. 뉴저지, 오리건, 워싱턴, 네바다 등 일부 주들은 합법화는 아니지만 시민적 결합 등의 형태로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의 주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실제 비슷한 연령의 대학생인 두 여성의 의견도 확연하게 나뉘었다. “프로포지션 8이 통과됐을 때 캘리포니아 주민이라는 것이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다시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은 우리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아름다운 사례다. 종교적인 믿음과 동성결혼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두 성인이 합의한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결혼이라는 계약에 누구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애슐리 론코·23·샌디에이고 거주)

“정부가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규제할 수는 없다. 정부는 결혼을 허락하거나 면허를 줄 수도 없다. 프로포지션 8의 번복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결혼은 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고, 사회의 주춧돌이라는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타우니 매들렌·22·프로보)

동성결혼 지지자들은 결혼의 합법화 문제를 평등권뿐 아니라 각종 보험과 의료 혜택 등에서의 경제적, 사회적인 차별로 여기고 있다.

동성애자 권익단체인 ‘GLAD(Gay & Lesbian Advocates & Defenders)’의 홈페이지에는 1996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사인한 이성결혼을 보호하는 취지의 ‘연방결혼보호법(DOMA·the federal Defense of Marriage Act)’의 피해 사례가 실려 있다.

1999년 레즈비언 밴드에서 처음 만난 레즈비언 커플 아네트 씨와 에이미 씨는 이 홈페이지에 자신들이 세 차례 결혼한 사례를 소개했다. 처음에는 2001년 버몬트 주에서 시민적 결합으로 관계를 인정받은 것이고, 두 번째는 친구와 가족들이 참여한 가운데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04년에는 결혼이 합법화된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다시 결혼했다.

아네트 씨는 “결혼 뒤 에이미를 의료보험 혜택 대상자로 신청했지만 거부당했고, 나중에 추가 비용을 내고서야 병원이 이를 받아들였다”면서 “결혼을 이유로 직장 안의 누구와도 평등하지 못한 것은 참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동성커플이 결혼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유에는 경제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 시민적 결합과 몇 주가 시행 중인 ‘파트너십’은 해당 주가 아닌 다른 주에서는 유효하지 않다. 연방정부는 결혼과 관련해 사회보장과 세금, 이민 등에 걸쳐 1138개 법률과 정책으로 보호하고 있지만 동성커플은 제한적인 혜택만을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30대 미국인의 말이다. “동성결혼 논쟁은 백악관이나 의회, 교회, 학교 등 미국 전역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주에서 동성결혼에 우호적인 조치가 시행되면 다른 주에서는 상반된 법률이 통과된다. 그리고 찬반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동성결혼 문제, 그것은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투쟁하는 ‘전투’다.”

■ 종교계 ‘동성결혼’ 입장
가톨릭-장로교-모르몬 “반대”… 성공회-루터교 “긍정”


미국 종교계는 동성결혼 인정은 물론 결혼식의 주재, 성직자의 성 정체성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가톨릭과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모르몬)는 동성결혼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양측은 ‘프로포지션 8’ 등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측에 자금과 자원봉사 인력을 제공하는 등 동성결혼 저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 교단은 동성결혼에 관한 엇갈린 입장이 나와 혼선을 빚고 있다.

장로교는 최근 교단 연합회에서 결혼을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이라는 종전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성직자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동성결혼 문제에 관해서는 51%의 지지율로 동성결혼을 결혼이라는 범주에 넣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한 참석자는 “미세한 차이로 동성결혼 인정 건이 부결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를 얘기할 필요는 없게 됐다”고 밝혔다.

성공회는 동성결혼에 관해 가장 수용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6년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해 지원한다고 결의했고, 동성결혼이나 시민적 결합을 금지하려는 어떤 법률적 수정 조치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9년에는 주교들에게 동성결혼 커플을 축복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루터 교회도 내부에 이견이 있지만 2009년 같은 성(性)의 커플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지원한다는 사회적 성명을 채택했다.

유대교의 경우 개혁적인 그룹은 동성애자의 권리와 동성결혼을 인정했지만 개별 랍비들이 동성커플을 위한 종교 의식을 집행하는 것은 선택에 맡겼다. 정통 그룹은 여전히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보수주의 교회협의체인 복음주의협회는 최근 동성결혼이나 시민적 결합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고, 침례교는 “동성애는 성경적인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감리교도 2008년 기존의 결혼관을 재확인하면서 성직자들이 동성결혼을 주재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 기사는 지난 1년간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미국 유타 주 브리검영대에서 연수한 문화부 김갑식 차장의 보고서입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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