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美40대 방송국 인질극… 특공대가 사살

동아일보 입력 2010-09-03 03:00수정 2010-09-0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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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타락 경고하라” 요구
미국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 주에 있는 다큐멘터리 전문방송국 ‘디스커버리채널’ 본사 건물에서 1일 오후(현지 시간) 하와이 태생의 제임스 리 씨(43·사진)가 4시간 가까이 무장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에 사살됐다. 리 씨는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로 알려졌다. 미국 현지경찰은 리 씨가 한국계인지 확인해 주지 않았다.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 경찰은 “설득 과정에서 용의자가 점점 더 극도의 흥분상태로 빠져들었다. 인질 3명 중 1명을 향해 권총을 겨누는 순간 특공대를 투입해 총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인질로 잡혀 있던 방송국 직원 2명과 경비직원 등 3명은 무사히 구출됐다. 리 씨는 이날 오후 1시경 권총과 폭발물로 보이는 금속물질을 휴대한 채 방송국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였다. 방송국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건물 안에 있던 1900여 명을 긴급 대피시킨 뒤 폐쇄회로(CC)TV로 범인의 동태를 지켜보면서 휴대전화로 범인과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사살을 택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리 씨가 디스커버리채널에 인간의 타락을 경고하고 지구를 구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을 요구하며 몇 년 동안 항의시위를 벌여왔다고 전했다. 그는 2008년 2월 방송국 앞에서 2만 달러를 공중에 뿌리며 1주일 동안 시위를 하다 체포돼 2주간 복역했다. 당시 법원은 보호관찰 6개월과 벌금 500달러, 방송국 건물 500피트(약 152m) 이내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당시 그는 돈을 뿌리면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쓰레기일 뿐”이라고 외쳤다. 또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SaveThePlanetProtest.com)에 환경에 관한 에세이를 응모토록 해 참가자에게 20달러, 에세이가 채택된 사람에게는 상금 1000달러를 주는 등 기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하와이의 부동산을 팔아 마련한 9만 달러를 활동비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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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인간이 가장 파괴적이고 더럽고 오염된 존재다. 더는 기생충 같은 신생아들이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동물과 곤충을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리 씨는 유인원과 12세 소녀가 짝을 이뤄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의 소설 ‘나의 이스마엘(My Ishmael)’의 작가 대니얼 퀸 씨와 SF영화 ‘스타트렉’의 주인공 제임스 커크를 자신의 영웅이라고 했다.

그는 경찰과 대치하면서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인간 복제를 막는 한편 지구온난화와 자동차 배기가스 등 환경오염을 중단하도록 홍보하는 내용의 프로그램과 자신의 인터뷰가 방송되도록 해달라는 등 11개 항목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주미 한국대사관은 인질극 발생 직후부터 범인인 리 씨가 한국계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사관은 리 씨가 일단 미국시민권자로 밝혀짐에 따라 재외국민보호 대상이 아니며 미국 경찰에 사살 경위 등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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