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직장인의 영웅 된 여객기 승무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1일 16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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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고 느낄 때 직장을 그만두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화끈한 게 있을까.

미국 항공사 제트블루의 베테랑 승무원 스티븐 슬레이터(38)는 9일 뉴욕 케네디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지도 않았는데 여성 승객이 일어나 가방을 꺼내려 하자 주의를 줬다. 하지만 슬레이터는 오히려 이 승객에게 욕설을 들었고 떨어지는 가방에 머리까지 맞았다.

화가 잔뜩 난 그는 기내 방송 마이크를 잡고는 "20년 동안 이 일을 해왔지만 이젠 끝"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기내 카트에 있는 맥주를 몇 모금 마시고는 비상 탈출문을 열고 미끄럼틀로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경찰은 공항 인근 자택에서 슬레이터를 체포했다. 부주의한 행동으로 승객을 위험에 빠뜨린 혐의였다. 하지만 기내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하나둘씩 알려지면서 여론은 그를 동정하는 쪽으로 급격히 확산됐다.

미국 네티즌들은 "아무리 손님이라지만 그렇게 (승무원에게) 모욕을 줘선 안 된다"며 "비행기에서 내렸어야 하는 건 승무원이 아니라 손님"이라고 주장했다. 슬레이터의 페이스북에는 10일 현재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해 지지의사를 밝혔고 일부는 "슬레이터를 위해 변호사 비용을 모으자"고 나섰다. 급기야는 그를 돕기 위해 슬레이터의 자화상을 그려 팔겠다는 화가까지 나타났다.

사람들은 이 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슬레이터가 모든 직장인의 꿈을 대신 이뤄냈다"고 즐거워했다.

2년 반 동안 승무원으로 일했다는 한 네티즌은 "나도 승무원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는 등 별의별 손님들을 다 겪었다"며 "슬레이터의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승객들이 최소한 우리들의 지침을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점 점원으로 일했던 한 시민도 슬레이터의 기내 방송을 떠올리며 "이전 직장에서 사표를 내는 날, 나도 가게 마이크를 켜고 주인에게 왕창 욕을 쏟아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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