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물결속 “反러감정 안된다” 확산

  • Array
  • 입력 2010년 4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주말 참극 딛고 안정 되찾는 폴란드
러도 ‘카틴숲’ 재조명 영화 상영… 화해 무드 고조
카친스키 시신 대통령궁 안치… 오늘 추모객에 공개

충격 속의 주말을 보내고 12일 월요일을 맞은 폴란드. 사고가 터지고 이틀이 지나면서 폴란드 국민들에게서는 슬픔을 넘어서 사태를 좀 더 냉정히 봐야 한다는 성찰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왜 그토록 중요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었던가” 하는 안타까움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2년 전 폴란드 서부 포즈난 근처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톱클래스 조종사 몇 명이 함께 사망했을 때 사고조사대책위원회는 앞으로 중요 인물들이 한꺼번에 비행기를 타지 말도록 권고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또다시 주요 정치인, 군 수뇌부, 고위 관료들이 함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시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바르샤바에서 만난 50대 시민 에드몬데 아스콜로보비치 씨는 “같은 실수가 왜 반복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70년 전 러시아가 저지른 대학살을 기억하는 시민들 중에는 사고 원인에 대해 러시아를 겨냥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 시민은 이번 일이 반(反)러 감정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10일 스몰렌스크 사고 현장에서 화환을 바친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포옹하는 도날트 투스크 총리의 모습은 폴란드인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많은 폴란드인이 1980년대 반공산적인 자유노조연대에서 활동했고 러시아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대통령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그의 죽음 이후 러시아와의 화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바르샤바 주재 외신들은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생전에 러시아와의 불화를 강조했지만 실제 폴란드 TV는 투스크 총리와 긴밀히 협조하는 푸틴 총리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도 대조적이다.

러시아도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총리급으로는 이례적으로 푸틴 총리가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 데 이어 러시아 국영방송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카틴’을 상영할 계획이다. 폴란드 언론은 카틴 사건을 아예 모르는 러시아인이 많은 만큼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11일 밤에도 바르샤바 대통령 궁 앞과 주변 구시가지를 오가는 사람의 물결은 그치지 않았지만 10일 밤과는 달리 차분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거리를 오고 갔다. 젊은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궁 앞 한쪽에서 낮은 소리로 함께 현대적 감각의 가톨릭 성가를 불렀다. 거리 곳곳이 성당으로 가득한 폴란드 구시가지에는 11일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에도 미사가 거행됐다. 대부분 성당이 인파로 꽉 찼다.

폴란드 정부는 카친스키 대통령의 시신을 대통령 궁에 안치해 13일 추모객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 외 나머지 사망자의 시신은 스몰렌스크에서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현재 14구만이 신원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는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계획이다. 사망자의 유족들은 11일 모스크바로 떠났다.

폴란드 정국은 슬픔을 딛고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육군참모총장 등 새로운 군 수뇌부가 임명됐고 임시 중앙은행 총재도 취임했다.

바르샤바=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