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결국 위헌 논란이 큰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을 강행처리했다. 야당 의원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교대로 천막농성을 해도, 지도부가 매일 ‘악법’ 부당성을 외쳐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로 버텨 봐도 거대 여당의 일방통행을 막는 덴 한 줌 방지턱도 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거대 여당의 횡포라고 하지만 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위협하고 있었다면 민주당도 눈치를 봤을 것이다.
정부여당이 마뜩잖으면 민심은 가장 먼저 제1야당을 쳐다본다. 그런 시점이 다가왔다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체감이다. 급등한 전월셋값과 1500원을 넘보는 원-달러 환율은 민생을 조인다. 한국갤럽이 매달 진행하는 경제전망 조사에서 경기낙관론은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6월 52%에서 이달 31%로 크게 줄었다. 반대로 경기비관론은 25%에서 40%가 됐다. 살림살이 전망 역시 6월 이후 이달이 긍정은 가장 낮고 부정은 가장 높다.
민심의 고개는 좌우를 살피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정부여당의 대안이 될까 싶어 국민의힘을 바라봐도 ‘내 삶’과는 하등 관련 없는 당원게시판 얘기가 도드라지니 잠깐 줬던 시선을 곧장 거두게 만든다. 당에 뿌리도 없고, 정치의 중심에 설 이유도 없는 당무감사위원장의 발언이 국민의힘이 하고자 하는 말을 가린다.
당원게시판 논란이 블랙홀처럼 국민의힘을 삼키는 건 결국 이 문제가 당 핵심 스피커인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두 정치인의 만남과 대화 여하에 따라 어쩌면 이 문제를 국민의힘의 이슈 중심에서 없애버릴 여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치는 상상력의 산물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국민의힘 주변에서 그 ‘상상력’ 범주에조차 포함시키지 않았던 게 두 사람의 만남이다. 두 사람 간 노선 투쟁 때문이든, 차기 대권 경쟁 때문이든, 감정의 골 때문이든 마치 한 사람은 사라져야 하는 게임처럼 바라봤다.
하지만 야당의 두 유력 정치인이 제로섬게임만 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민주당이 중앙행정권력도, 입법권력도 완전하게 접수한 마당에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권력마저 내주면 국민의힘은 기대고 설 작은 공간조차 사라진다.
계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대선, 전당대회 등을 거치며 온갖 부침을 겪었던 두 사람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노선 변경, 외연 확장 요구로 당 안팎에서 강한 압박을 받던 장 대표는 14번의 ‘변화’ 강조와 24시간 필리버스터로 반전 계기를 마련했다. 한 전 대표는 여러 대여 투쟁 프레임을 주도하다, 최근 토크콘서트로 팬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두 사람에게서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한 전 대표는 장 대표의 필리버스터 다음 날 “혼신의 힘을 쏟아냈다. 노고 많으셨다”고 했다. 장 대표가 14번 외친 변화의 의미는 극단적인 세력과의 ‘세련된 결별 준비’라는 얘기가 들린다.
국민의힘이 지리멸렬하면 반사이익을 얻는 건 정권과 여당이다. 한쪽 날개만 비대해지면 국민들에게 좋을 게 없다. 위헌적인 법안 강행 처리가 대표적인 예다. 두 사람은 보수 야권의 핵심 정치인이다. 사인(私人) 장동혁, 한동훈을 내려 놓고 만나길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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