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VIP 라인 형성” “원했던 검사 배치”… 어디까지 손을 뻗었을까

  • 동아일보

지난 15일 압수수색이 진행중인 경기도 가평 통일교 천원궁과 천정궁 전경. 뉴스1
지난 15일 압수수색이 진행중인 경기도 가평 통일교 천원궁과 천정궁 전경. 뉴스1
통일교가 한일 해저터널 건설 등 숙원 사업 청탁을 위해 정치권과 학계를 망라하는 ‘VIP 라인’을 형성하겠다면서 조직적인 로비를 추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대 대선을 5개월 앞둔 2021년 10월, 통일교 간부들이 한일 해저터널을 입법·정책화할 대통령이나 시도지사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면서 득표 활동을 할 수 있는 신도를 72개 시군구별로 150명씩 모으는 등 구체적 로드맵까지 짰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일터널연구회 같은 외곽 조직까지 만들어 여야 대선 캠프에 정책 제안서를 보내고 정치인들과 접촉했다고 한다.

당시 통일교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로비는 이뿐만이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일본 대사 자리와 국회의원 공천권까지 노린 정황도 있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등이 참석한 통일교 간부회의에서 이 같은 계획과 함께 “청와대 보좌진으로 들어가는 게 목표” “2027년에 대권 도전도 가능하다”는 언급까지 나왔다. 윤 전 본부장은 여야 대선 후보들이 미국 거물급 정치인들과 만나는 자리를 주선하면서 “(비용 문제를) 처리해 줘야 끈끈해진다. 보험을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종교단체 간부인지 정치 브로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직후 독대까지 했다.

검찰도 통일교의 포섭 대상이었다는 의혹도 나왔다. 경찰이 확보한 2017년 한학자 총재 보고 문건에는 “우리가 원했던 검사 1명이 (서울)동부지검에 배치됐다. 8개월간 준비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 통일교 간부는 “동부지검 사람들 접대하느라 바쁜 추석을 보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당시 통일교는 교단 측과 재산 분쟁 중이던 한 총재의 아들이 서울 노른자 땅의 통일교 지분을 처분한 것을 문제 삼아 서울동부지검에 횡령 혐의로 고발한 상태였다. 수사가 통일교에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검찰에 은밀한 로비를 벌였던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통일교의 전방위 로비 행태는 이권을 위해서라면 정치권도 매수 대상으로 보고, 검찰마저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도대체 어디까지 주무르려 했던 것인가. 통일교는 윤 전 본부장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하지만 한 총재에게 로비 정황이 보고된 문건들이 발견됐고, 산하 단체들도 동원되는 등 교단 차원의 정치 개입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의 연루 의혹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여야는 특검 합의만 해놓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수사 착수가 늦어져 중요한 증거가 인멸되거나, 공소시효가 지나가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통일교#한일 해저터널#정치 로비#대선#VIP 라인#정책 제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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