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에게 18년 만에 다시 무릎을 꿇을 것인가. 그리스에 이어 재정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큰 국가로 꼽히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헤지펀드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1992년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헤지펀드는 2주 만에 1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를 팔아치우며 파운드화 폭락을 부추겨 떼돈을 벌었다. 영국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투입하며 방어에 나섰지만 결국 백기를 들어야 했다. 영국인들은 지금도 소로스를 ‘파운드를 망가뜨린 악마’라고 부른다.
2010년 파운드화는 다시 무너지고 있다. 최근 런던 외환시장에서 6거래일 연속 하락해 1일(현지 시간)에는 장중 2.7% 이상 내린 1.4784달러까지 하락했다. 달러화 대비 10개월 만의 최저치로 1파운드 가치가 1.5달러 이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파운드화는 엔화 대비로는 1년 만에 저점을 기록했고 유로화에 대해서도 3개월 만의 최저치였다. 호주달러에 대해서는 무려 25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2일 파운드화는 전일 급락에 따른 반등으로 1.49달러 수준으로 회복했으나 약세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정치 경제적 혼란을 틈타 헤지펀드들이 유로와 함께 파운드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말 “유로의 폭락 이면에는 헤지펀드의 공격이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초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SAC 캐피털, 브리게이드 캐피털 등 유수의 헤지펀드 관계자들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은밀히 만나 저녁을 함께하며 유로화 공격을 공모했다는 것.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는 1992년 파운드화를 공격한 바로 그 소로스가 운영하는 펀드다.
이진우 NH선물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헤지펀드들은 겉으로는 달러가 금방 휴지조각이라도 될 듯이 달러 매도를 부추기며 한편으로는 달러를 사들였다”며 “그들이 올해는 유로화와 파운드화 약세에도 총력 베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법무부는 최근 헤지펀드들이 합세해서 유로화 가치를 끌어내렸는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지펀드들이 파운드를 공격하는 배경에는 영국의 불안한 정치 및 재정상태가 있다. 5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영국은 금융위기와 재정적자 누적으로 현 노동당 정부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지난주 여론조사 결과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추진력 있는 재정정책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져 예상보다 빠른 통화긴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1월 영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3.8%로 2008년 이래 가장 높았다.
그리스 못지않은 재정 부실도 취약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공공부채나 적자 상황을 감안하면 영국의 재정 상황은 그리스만큼 심각하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결과라기보다 영국 정부가 이미 짊어지고 있던 부분이라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파운드화가 얼마나 더 약세를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폴 로빈슨 바클레이스캐피털 애널리스트는 “파운드화는 현재 과매도 국면”이라며 “단기 약세를 감안해도 파운드당 1.45달러가 하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스위스계 투자은행 UBS는 “파운드 가치가 1.05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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