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국인 마약범 사형집행… 58년 만에 유럽인 첫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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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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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년전 아편전쟁 어두운 그림자가…

영국 정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2년 전 체포한 영국인 마약사범을 29일 처형했다. 1951년 이래 중국에서 처형된 첫 유럽인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의 영문판 ‘글로벌 타임스’는 최근 “아편전쟁의 어두운 기억이 떠오른다”라고 전했다. 160여 년 전 중국의 아편 단속을 이유로 전쟁을 벌여 중국의 몰락을 촉발한 영국에 대한 ‘중국의 복수’라는 뉘앙스다.

이번 사건으로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를 둘러싼 양국 간 외교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 영국의 간청을 묵살한 중국

중국 관영 언론은 중국 당국이 29일 마약 소지 등의 혐의로 최종심에서 사형이 확정된 영국인 아크말 샤이크 씨(53·사진)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이민자 후손인 샤이크 씨는 2007년 9월 타지키스탄에서 헤로인 4.03kg이 든 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이용해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烏魯木齊)로 들어왔다 체포됐다.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최근 그에 대한 하급심의 사형 선고를 확정하고 집행일을 29일로 결정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 반경 우루무치에서 독극물 주입 방식으로 사형됐다. 영국인으로는 처음이자 유럽인으로서도 1951년 마오쩌둥(毛澤東) 암살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총살된 이탈리아인에 이어 처음이다. 샤이크 씨는 처형 직전 가족과 마지막 면회를 했다.

샤이크 씨의 구명을 위해 총력을 다해 온 영국인들은 크게 경악하는 분위기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성명을 내고 “샤이크 씨의 처형을 가장 강력한 어조로 비난한다”며 “소름이 끼치며 (우리의) 끊임없는 구명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 총리 선처 호소도 묵살… 英 경악 ▼

英10차례 이의제기 안통해
中누리꾼 99% “사형 정당”


영국 정부는 최근 6개월간 고위 당국자 접촉을 통해 총 10여 차례에 걸쳐 샤이크 씨 사형 판결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최근 사형이 확정된 뒤에도 브라운 총리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선처를 호소했다. 영국 국민 수십 명은 이날 런던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 마약을 둘러싼 양국의 뿌리 깊은 갈등

중국이 이처럼 매몰찰 정도로 영국의 요청을 거절한 데는 역사적 배경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19세기 초반 마약 때문에 영국에 처참하게 당했다. 1840∼1842년 중국과 영국 간에 벌어진 전쟁은 마약의 일종인 아편이 빌미가 됐다. 당시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만회하려고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해 중국에 팔았고 청나라가 이를 단속하자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중국은 이후 100년 동안 서양에 유린당하는 굴욕적인 역사를 시작했다. 주영국 중국대사관도 이 사건과 관련해 “중국은 마약에 쓰라린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마약 문제는 매우 엄격하게 처리된다. 마약범에게는 사형도 가차 없이 선고되고 있다. 중국 국민도 이런 정부의 태도를 지지해 왔다. 환추시보는 이달 중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98.8%의 중국 누리꾼이 샤이크 씨에 대한 사형선고가 정당하다고 답했다고 이날 전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인터넷 매체인 런민망은 한 누리꾼의 말을 인용해 “만약 그 영국인 마약범이 중국 역사를 알았다면 자신의 범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절감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영국 측은 “이 사건은 마약을 얼마나 증오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도 중국만큼 마약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그동안 영국 정부와 샤이크 씨의 친척들은 그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며 비자발적으로 범죄에 연루됐다고 주장해 왔지만 중국 정부는 “근거가 없다”면서 묵살해 왔다.

가디언지는 국제사면위원회 통계를 인용해 중국 정부가 2008년 한 해 동안 171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고 전했다. 그나마 정부의 공식 통계가 아니라 언론에 발표된 것을 취합한 수치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2008년 한 해에만 6000명 이상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현재 중국에 수감 중인 한국인 가운데 마약범을 포함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없다고 이날 전했다. 다만 마약범죄 관련 11명을 포함해 모두 15명이 사형 집행유예(사형을 선고하되 2년 수형 과정에서 별문제가 없으면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제도)로 복역 중이다. 한국인은 2001년 마약범죄로, 2004년 살인죄로 총 2명이 사형됐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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