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지치에 거듭 경고한다”

  • Array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대학살 전범재판 또 안나오자
권오곤 재판장 결석재판 강행

피고인석은 텅텅 비어 있었다. 법복을 입은 판검사들만 도열해 앉았다. 벌써 이틀째. ‘발칸의 학살자’ 라도반 카라지치 전 세르비아 지도자에 대한 재판이 열린 27일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법정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재판장은 한국의 권오곤 재판관. 그가 입을 열었다.

“피고인이 또 출석하지 않은 것은 유감입니다. 거듭 경고합니다. 계속 재판에 나오지 않는다면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보고 불출석 상태로 재판을 열겠습니다.”

이어 권 재판장은 카라지치의 법정 대리인을 지정해 재판을 강행할 계획을 밝히고 검사에게 모두(冒頭)발언을 하도록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전쟁범죄로 불리는 1990년대 ‘발칸 대학살’을 단죄하기 위한 재판은 이렇게 시작됐다.

○ 기록만 120만 장

카라지치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이후 전범재판소 법정에 서는 최고 거물급 피고인. 13년 도피생활 끝에 지난해 7월 붙잡혔다. 그는 첫 심문에서 “판사가 편향적”이라고 반발했고 최근에는 “13개월의 재판준비 시간이 너무 짧다”며 재판에 불출석하겠다고 통보했다. 권 재판장이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대량학살과 인종청소, 각종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 등 모두 11가지. 검토해야 할 기록만 120만 장에 달한다. 전범재판소는 2010년 활동을 마무리해야 하는 한시적 법정이지만, 이 재판을 위해 시한을 2012년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2006년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선고를 앞두고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반인륜 범죄 단죄에 실패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카라지치는 현재 전화와 컴퓨터, 위성TV가 갖춰진 감방에 수감 중이다. 충분히 재판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최소 10개월은 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며 버티고 있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 난항 겪는 국제 형사재판

1993년 설립된 국제유고전범재판소는 지금까지 전범 161명을 법정에 세웠다. 특히 카라지치 재판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어 국제 형사재판에 냉소적인 주요국들의 참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재판은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재판 취지가 왜곡되거나 재판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도 많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경우만 해도 전범재판소와 달리 영구법정이지만 미국과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의 비준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