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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17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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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몰고 온 주범’으로 몰린 월가의 ‘퀀트(계량분석가)’들로부터 최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학과 물리학을 활용해 21세기 금융 관련 첨단 파생상품 및 거래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전 세계 금융시장을 주물러온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주식 투자 및 거래 모델이 결국 금융시장을 망가뜨린 것으로 나타나자 1년여 동안 연구를 거듭하며 고심해왔다.
이들이 최근 찾아낸 해결의 실마리는 자신들이 그동안 숫자와 통계에 파묻혀 ‘인간’이라는 핵심 요소를 놓쳤다는 반성이다. 객관적 데이터 외에 인간의 집단행동과 심리도 동시에 연구했어야 했는데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 수학 대신 인간행동학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많은 퀀트 학자들이 이론에 치우쳤던 기존 공식에서 선회해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정적인 인간 연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투자자의 움직임이 온라인상 누리꾼들의 행태와 유사하다는 전제하에 ‘사회적 네트워킹’ 차원에서 금융시장 분석에 접근하려는 시도도 나왔다.
미 코넬대에서는 경제학자와 컴퓨터공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이 최근 국립과학재단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주제를 승인받았다. 연구팀의 존 클라인버그 박사는 “전염성이 강한 인간의 집단행동이 복잡한 금융시장의 네트워크 속에서 얼마나 빨리,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금융공학과의 앤드루 로 박사는 진화생물학과 인지신경학까지 끌어들어 금융시장을 연구한다. 로 박사는 인간의 합리적 판단과 가격 형성의 정확성에 바탕을 둔 ‘효율적 시장 이론’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으로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전제 아래 ‘적응적 시장’이라는 가설을 내놨다.
○ “그래도 퀀트는 필요해”
전문가들은 앞으로 퀀트들이 새롭고 복잡한 새 프로그램 설계보다는 투자 시 위험 관리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위기 1년을 맞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금융시장 규제 강화 방침을 역설하면서 ‘고위험 고수익’ 투자가 설 자리도 과거보다 좁아졌다. 하지만 퀀트들의 존재 가치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망했다. 기존 퀀트들이 만들어놓은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오히려 더 많은 퀀트 수요가 생길 것이라는 얘기다.
MIT의 경우 기존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소화할 수 없는 첨단 금융공학 연구를 위해 최근 1년 과정의 학위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25명을 뽑는 데 179명의 지원자가 몰려 여전히 높은 인기를 나타냈다. 퀀트들이 설계한 컴퓨터 모델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헤지펀드들도 다시 득세할 조짐이다. 1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300개의 새로운 헤지펀드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퀀트(Quant) ::
Quantitative Analyst의 약자로 계량분석가를 뜻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근무하다 냉전 종식 이후 일자리를 잃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정책적 차원에서 금융가로 편입되면서 활동이 본격화됐다. 수학과 과학 모델을 이용해 시장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및 이를 활용한 상품 등을 만들어 왔다. 리스크가 큰 월가의 각종 첨단 파생상품 상당수를 이들이 주도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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