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 첫희생 미군유해 18년만에 찾다

  • 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전투 첫날 전투기 몰다 격추 “적지에 단1명도 남기면안돼”
美국방부 묘지파고 병원수색…이라크 사막서 결국 유해발굴
소극적 수색 질타했던 유족 “포기안한 정부 자랑스럽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쟁 첫날 추락한 미군 전투기 조종사 유해가 18년 반 만에 발굴됐다. 미국 국방부는 1991년 1월 17일 실종된 마이클 스콧 스파이처 소령의 유해를 이라크 서부 안바르 주 사막에서 발견했다고 2일 발표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의 쿠웨이트 침공 격퇴를 명분으로 시작된 걸프전 첫날 FA-18 호닛 전투기를 몰고 공습에 나섰다가 격추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그의 생존 여부는 미 국방부와 참전군인 가족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개전 첫날 TV에 등장한 딕 체니 당시 국방장관이 “첫 아군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한 이래 국방부는 ‘사망→실종→실종 또는 포로’로 스파이처 소령의 상태를 변경해 왔다.

수색에 나선 미군은 1995년에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국경 동북쪽 160km 지점에서 전투기 날개 등을 찾았지만 조종사와 조종석은 발견하지 못했다. 스파이처 소령의 플로리다 주 고향마을에는 “스파이처를 석방하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고 가족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친구와 이웃들은 ‘스파이처 석방을 기원하는 친구들’이란 단체를 조직해 수색을 독려했다.

미군은 2003년 봄 이라크를 점령하자마자 바그다드 인근 묘지들을 팠고 50곳 이상의 감옥, 병원을 수색했다. 한 옥사 벽에 ‘MSS’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게 발견되기도 해 살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한 이라크인의 제보로 사막에 파견된 미 해병이 모래 속에 묻힌 유해를 찾아냈다. 조사 결과 스파이처 소령은 비행기 추락 당시 사망했고 시신을 발견한 베두인족이 사막에 묻어준 것으로 추정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애도를 표하면서 “작전 중 실종된 모든 미국의 남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우리의 결의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1차 걸프전을 명령했던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아버지)은 “쿠웨이트 해방을 위해 산화한 첫 희생자”라고 애도했다. 그의 모교인 플로리다대는 교내에 그의 이름을 딴 테니스센터를 건립했고, 국방부는 이라크 티그리트 공군기지를 ‘스파이처 공군기지’로 개명했다.

격추 직후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수색에 나서지 않은 걸 질타했던 스파이처 소령 가족들은 성명에서 “국방부가 수색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우리의 요구를 받아줘 자랑스럽다. ‘단 한 명의 군인도 홀로 적진에 남지 않게 하라(No one left behind)’는 게 이뤄진 데서 위안을 얻는다”고 밝혔다. 실종 당시 3세, 1세였던 그의 딸과 아들은 대학생이 됐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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