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中에 합병… ‘민족 차별’ 끝없는 충돌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7분


■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는 티베트와 함께 사소한 불씨만 댕겨도 분리주의 운동이 격화될 수 있는 휘발성이 높은 곳이다. 유목이 생업인 위구르족은 중국인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과 언어 종교 생활방식이 다른 것은 물론 최근 들어 한족들이 대거 위구르 자치구로 이주하면서 경제권마저 장악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위구르족은 18세기 말 청나라의 침입을 받기 전까지 동투르키스탄 등 독립 국가를 유지해 왔다. 1884년 11월 청의 영토로 합병된 후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해 1949년 중국에 합병되기 전까지 두 차례 독립을 쟁취했다.

중국에 합병된 후에는 언어와 민족문화가 다른 한족에 지배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됐다. 하지만 티베트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이유와 비슷하게 영토는 넓고 인구는 적은 땅에 한족의 이주가 늘고 이들이 경제권을 장악하면서 ‘민족 간 경제력 불평등’이 분리 독립과 사회불안의 또 다른 요인으로 떠올랐다.

1953년 인구센서스 당시 위구르 자치구의 인구분포는 위구르족 75%에 한족은 6%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4년에는 위구르족 45%, 한족 41%로 근접했다. 중국 정부는 병단(兵團)이라는 ‘생산건설부대’를 신장이나 티베트에 설치해 한족의 이주를 도왔다. 위구르족은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등 10여 개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선전 효과를 높이기 위해 베이징(北京) 시 등 대도시의 버스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테러활동을 벌였다. ETIM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폐쇄를 결정한 관타나모 수용소에도 이 단체원 몇 명이 수감되어 있어 중국이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면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신장위구르 자치구 약사 및 투쟁 일지▼

1884년 동투르키스탄 청(淸)의 영토로 합병

1944년 독립운동으로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독립

1949년 중국에 합병

1955년 신장위구르 자치구 성립

1995년 7월 허톈 시 경찰서 습격 등 격렬 시위

1997년 2월 이닝 시 시위로 7명 사망, 200여 명 부상

2008년 3월 항공기 테러 용의자 위구르족 19세 여성 검거 발표

8월 4일 카스 시 2명 위구르족, 차량 폭탄 테러로 경찰 16명 사망

2009년 7월 5일 우루무치에서 대규모 유혈 시위로 140여 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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