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여성억압법안 재검토

  • 입력 2009년 4월 6일 02시 53분


나토 각국 정상 비난에 백기

4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남편의 허락 없는 외출 금지 등 여성억압 입법을 추진해 온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이에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법안의 재검토를 지시하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고 뉴욕타임스 등 외신이 4일 보도했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비판의 선두에 섰다. 그는 “각국의 문화를 존중하더라도 모든 나라가 지켜야 할 원칙은 있는 법”이라며 “이 법안은 끔찍할 정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이 법안이) 아프간의 후퇴를 가속화할 것”이라며 “아프간은 여성의 권리도 남성과 동등하게 존중받는 민주적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우리는 평등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아프간에 병력을 파견한 것”이라며 “그들의 가치와 타협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일갈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항의의 표시로 아프간에 파병된 여군 병력의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아프간의 치안을 사실상 책임지는 나토 회원국들이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아프간 정부는 꼬리를 내렸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4일 기자회견에서 “동맹국의 비판은 잘못된 번역과 법률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항변하면서도 “법무장관에게 법안의 재검토를 지시했으며 헌법 또는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위배되는 사항이 발견되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지난달 말 서명한 ‘시아파 가족법’에는 △남편의 허락이 없을 경우 여성의 외출을 금지하고 △남편의 잠자리 요구 거부 불허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만 양육권을 부여하는 등 여성 억압적인 규정이 명시돼 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8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법안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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