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납세에 있어서 평범한 시민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규율이 다를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낸 셈이 됐다. 그런 내 자신이 절망스럽다. 내 책임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일 CNN, 폭스뉴스 등 5개 언론사와 가진 연쇄 인터뷰에서 강한 톤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톰 대슐 보건장관 내정자가 납세 파문으로 낙마한 직후였다.
그의 납세 파문은 지난달 30일 불거졌다. 2005년 민주당 정치자금 조달자가 운영하는 회사 자문위원장 자격으로 리무진과 운전사를 제공받은 것이 개인 수익으로 간주돼 납세신고를 해야 했는데도 장관으로 지명된 후인 지난달 초에야 이자를 합쳐 14만6000달러의 세금을 냈다. 또 의료관련기관 자문과 강연료로 25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린 게 드러났다. 로비스트는 아니지만 대통령이 제시한 ‘로비문화 근절’ 윤리강령에 비춰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대슐 내정자는 3일 오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장관 지명 철회를 요청했지만 다들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2일에만 해도 변함없는 지지를 표명했으며 상원에서도 일부 공화당 의원이 벼르긴 했지만 인준 통과가 무난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하원의원 4선, 상원 3선 등 26년간 의회를 누빈 베테랑 정치인인 그는 건강보험 개혁의 최적임자로 자타가 인정해왔다.
그의 사퇴는 앞서 낸시 킬퍼 백악관 성과관리 책임자(Chief Performance Officer)의 자진사퇴가 촉발시킨 측면이 있다. 킬퍼 씨는 1995년 2명의 가정부를 고용하면서 고용보험료의 일종인 실업보상세 298달러를 내지 않아 주택에 벌금을 포함한 946달러의 압류가 들어간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자 자진사퇴했다. 이보다 몇 배 더 심각한 탈세논란에 휩싸인 대슐 내정자로선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로써 오바마 행정부 고위직 내정 후 낙마한 사람은 상무장관 내정이 철회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포함해 3명으로 늘어났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세금 불성실 신고로 홍역을 치르다 상원 인준을 간신히 통과했다.
정권인수팀은 고위직 후보들에게 63개 항의 질문을 던지고, 변호사 수십 명이 검증을 했다고 했지만 허점을 드러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빠른 속도로 인선을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라는 지적이다.
이번 대슐 내정자의 사퇴와 대통령의 반성은 취임 2주를 맞은 대통령이 스스로와 행정부에 더 엄혹한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제위기 극복에 매달리느라 ‘워싱턴의 낡은 관행 타파’라는 정권 탄생의 대의를 소홀히 했다는 반성 차원이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구제금융을 받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50만 달러 이상의 보수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4일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상무장관에 공화당 소속 저드 그레그(뉴햄프셔 주) 상원의원을 공식 지명했다. 후임 상원의원에는 온건성향 공화당 여성 정치인인 보니 뉴먼 씨가 내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