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8년의 교훈]<下>빛바랜 부시표 정책

  • 입력 2009년 1월 17일 02시 58분


금융위기에 ‘따뜻한 보수주의’ 찬밥

독재국에 민주 심기-소외층 지원 줄곧 추진

부동산 거품 터지자 경제확대 치적 ‘와르르’

“나는 항상 착한 사마리아인을 생각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자주 인용한다. 강도를 당해 상처를 입고 길에 버려져 있는 행인을 다들 그냥 지나쳐 갔지만 한 사마리아인은 측은한 마음에서 그 행인을 도와줬다는 이야기다.

그의 눈으로 보면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국민, 사담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 민중, 김정일 치하의 북한 주민, 학살위기에 처한 수단 다르푸르의 시민,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어린이는 강도를 당해 쓰러진 행인이며, 미국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되는 사마리아인이라는 것. 실제로 그는 아프리카 에이즈 대책 지원예산 등을 확실하게 밀어붙였다.

착한 사마리아인 논리는 국내 정책에선 ‘온정적 보수주의’로 구현됐다. 분배보다는 성장을 통해 국부(國富)를 키우는 걸 원칙으로 하지만 소외계층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보수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게 그가 강조해온 통치 철학이었다.

그러나 ‘착한 사마리아인이 지휘한 온정적 보수주의 통치’ 8년의 결과는 유례없는 경제난과 빈부격차다. 국민들로선 ‘구조 받은 행인’이 아니라 ‘멀쩡하게 길을 가다 강도를 당해 쓰러진 듯한’ 경험을 한 셈이다.

1100만 명 이상이 직장을 잃었고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은 집권초기 3900만 명에서 4500만 명으로 불어났다. 공화당 간판이 무색하게 연방 재정은 2360억 달러 흑자에서 1조2000억 달러 적자로 바뀌었다.

물론 경제위기의 책임을 부시 대통령에게만 지우는 건 무리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모기지 산업과 금융산업 규제환경의 변화는 부시 행정부 이전부터 진행됐다.

부시 대통령도 최근 “‘왜 하필 금융위기가 내 임기 때 일어난 겁니까’라고 통탄하곤 한다”며 경제위기의 원인제공을 자신이 한 건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곤 했다. 그는 또 “(경제위기 전엔) 52개월 연속 일자리가 늘어났고 경제가 확대됐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2003∼2007년 경제 확대는 펀더멘털이 부실한 사상누각이었다고 지적한다.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 지출이 경제 확대를 이끌었고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이어지는 부실을 키웠다.

특히 모기지 업체와 월가에서 ‘돈 놓고 돈 먹기’식 행태가 문어발처럼 뻗어가는 데도 이를 진단하지 못한 채 병마(病魔)를 키웠다. 재임기간 창출한 신규 일자리는 연평균 37만5000개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7분의 1,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2005년 2000명 이상이 숨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자체는 자연재해였지만 부실한 대처로 피해를 심화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정책에서도 ‘무능한 사령관’이란 비판에선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임기 말이 되면서 “인기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영혼을 팔지 않은 인물로 기억되고 싶다”며 훗날 역사의 평가는 지금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자주 내비쳤다.

그러면서 해리 트루먼 정부의 6·25전쟁 참전 결정이 당시 미국 내에서 혹독한 여론의 비판을 받았지만 훗날 민주주의 한국을 탄생시킨 밑거름이 됐음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내린 인기 없는 결정들을 옹호하곤 했다.

그러나 그의 실정(失政)은 21세기 벽두 8년간 지구촌 사람들의 운명에 너무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훗날의 평가를 운운하는 건 사치라는 지적도 많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강경 보수파가 주장하는 부시가 잘한 일 10가지

△이라크 병력 증강=여야와 여론의 만장일치 반대를 무릅쓰고 병력을 증강한 결과 이라크에서 취약하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시작.

△중국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한국 일본 호주 등 동아시아 민주국가 와 관계 강화.

△2001년 교토의정서 가입 거부=인도와 중국을 규제 대상에서 배제한 교토 의정서는 말도 안 되는 것임. 하지만 여론과 유럽의 비난을 예상하면 가입 거부는 어려운 결정이었음.

△테러리스트 심문 기법 향상으로 제2의 9·11테러를 예방.

△대통령의 권위 재건=베트남전, 워터게이트, 클린턴 섹스스캔들 등으로 추락하 고 입법부와 사법부에 침해당한 대통령의 권위를 회복해 3권 분립 명확히 했음.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지 및 2002년 웨스트뱅크에서 이스라엘 탱크

철수 압력 가함.

△초등교육 학력향상 법안(No Child Left Behind) 시행.

△2005년 2기 취임 때 민주주의 확산을 외교의 원칙으로 천명.

△처방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시행=반대를 무릅쓰고 2003년 시행.

△보수성향 대법원 판사 임용으로 대법원 ‘안정화’.-출처 위클리스탠더드

“기회 또 주면 결정 달랐을 일 있어”

부시 고별연설서 아쉬움 토로

“라이스는 내 여동생같은 사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5일 오후(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대(對)국민 고별연설을 통해 “만일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다르게 했을 일들이 있지만 항상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새기고 양심에 따라 행동해 왔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시민대표 초청 방청객과 참모, 가족 등 2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한 연설에서 “모든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좌절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나는 선과 악에 대해 종종 얘기해 왔고 이는 일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며 “하지만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며 이 둘 사이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앞서 국무부 청사를 고별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오랜 우방인 한국 일본과 동맹관계를 심화했고 중국과의 연대도 강화했다”며 “우리는 한중일과 동시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유일한 정부일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콘디(애칭)에 대해 물으면 ‘내 누이동생 같은 사람’이라고 대답해 준다”며 “콘디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천적인 생각과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역사는 콘디를 위대한 국무장관 중 한 명으로 기록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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