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씁쓸한 오바마 인맥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1월 8일 03시 01분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한국을 실제보다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300인 외교안보 참모그룹 멤버였던 A 씨는 6일 기자에게 “한국 정치인들이 ‘오바마 인맥 찾기’에 분주하다는 보도를 보고 좀 안타까웠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외교에서 인맥이 중요하니까”라고 변명했지만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외교에서 인적 네트워크는 물론 중요하다. 특히 실무진 간의 신뢰는 중요하다. 그런데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다.

“저 아시죠” 식은 곤란

A 씨는 “수전 라이스(전 국무부 차관보)를 비롯한 오바마 캠프 외교안보 참모들은 다들 한국을 잘 알고 있고 한국 외교관, 지식인들과 인연을 맺어 왔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도 “고위급에서는 인맥 가지고 외교를 하는 게 아니다”라며 “진짜 중요한 건 우리가 만들어 상대에게 제시하는 정책 콘텐츠,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외교의 매너와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갑을(甲乙)관계가 아닌 동맹 간 외교관계에서는 누가 그 자리에 앉든 공직에 임명되는 순간 무시할 수 없는 파트너가 된다. 의원 외교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쌓아 온 우정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마치 로비하듯 온갖 인연을 동원해 “저 아시죠”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외교에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가 아니며,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그럴 정도로 열세에 있지 않다.

워싱턴에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미 행정부와 정치인들은 한미동맹을 한국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에선 “반미(反美)면 어떠냐”는 식의 발언이 난무했지만 미국은 달랐다. 감정적으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일부 우파 정치인, 언론인은 있지만 책임 있는 자리의 사람들은 한미동맹에 금이 갈까 봐 항상 노심초사했다.

같은 맥락에서 오바마 행정부 출범으로 동맹이 엇박자를 빚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최근 동아일보가 만난 오바마 캠프의 직간접적 관계자 4명은 한결같이 “기우(杞憂)”라는 반응을 보였다.

핵 확산 문제는 오바마 당선인이 미국이 당면한 2대 위협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중요한 과제이며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한 공조가 필수불가결한 핵심 파트너란 게 이들의 인식이었다.

지금의 미국이 한미 공조에 부여하는 의미는 과거 ‘김영삼-빌 클린턴’ ‘김대중-조지 W 부시’ 시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은 美의 핵심파트너”

미국의 정권교체기를 맞아 엇박자가 나지 않게 긴밀히 협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민주당 라인과의 관계에 소홀한 대목이 있었다면 보강해야 한다.

하지만 21세기 한미동맹은 안면으로 접근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서 지나치게 겸손한(modest)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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