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눈물을 보인다고 해도 용서해다오
참으려 해도 어쩔수 없이 너희들을 그리워할 것이기에…》
페일린 아들 등 이라크 파병식… 주지사 자격 연설
“더 쉽고 편안한 길 대신에 국가에 대한 봉사를 택한 너희들이 한없이 자랑스럽구나. 우리가 약간의 눈물을 보인다고 해도 용서해다오. 참으려 해도 어쩔 수 없구나. 너희를 한없이 그리워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12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알래스카 주 페어뱅크스 포트웨인라이트의 한 활주로.
이라크에 파병될 4000명의 군인과 배웅 나온 가족들에게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연설을 했다. 장병 가운데는 페일린 후보의 19세 된 아들 트랙 일병도 포함돼 있었다.
알래스카 주지사 자격으로 마이크를 잡은 페일린 후보는 “이라크전쟁은 ‘정당한 대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자기 아들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 아들도 내달 이라크行
사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내 미국 사회에선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전장에 자녀를 보낸 지도층 인사는 행정부와 의회를 통틀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비롯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
그러나 이번 대선 후보들은 어린 딸만 둘 있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제외하곤 모두 전장에 아들을 보내게 된다.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20세 된 아들은 이미 이라크에서 해병으로 6개월 복무했다. 그럼에도 매케인 후보는 지금까지 아들의 이라크 복무를 한 번도 화제에 올린 적이 없다.
다만 부인 신디 씨가 연설에서 “아침에 아들이 가방 끈을 조이며 버스에 오르는 걸 보면서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절감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신디 씨는 아들이 떠날 때 비행장까지 배웅하려다 아들이 “다른 부모들은 비행장까지 못 온다. 특별대우는 싫다”며 반발해 포기했다고 한다.
다음 달에는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아들 보(39) 씨가 이라크에 간다. 델라웨어 주 검찰총장으로 주 방위군 대위이기도 한 보 씨는 이라크에서 법무자문관으로 근무할 것으로 알려졌다.
美 당국 “특별대우는 없다”
미군 당국은 유명인사 자제들의 이라크 근무에 대해 “특별대우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작전에 투입할 경우 반군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일린 후보가 파병 환송식에서 연설한 데 대해서도 “지나친 조명은 아들과 부대에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미국에서 대통령 재직 중 자녀가 전장에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네 아들, 그리고 6·25전쟁 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이 복무한 게 전부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내가 스포츠면 잡으면 페일린은 1면 잡아
어릴때부터 신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미국 대선 정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의 신변에 얽힌 얘기들이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CNN방송은 11일 페일린 후보의 아버지 척 히스(70) 씨와의 인터뷰를 방영했다.
전직 교사인 히스 씨는 딸이 어릴 때부터 시사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세라는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때 신문을 나보다 더 많이 읽었다. 내가 스포츠면을 잡으면 딸은 1면을 잡았다. 세라는 전국뉴스뿐만 아니라 지역뉴스 등 모든 것을 다 읽으려고 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히스 씨는 “세라는 무엇이든 정말 열심히 하는 타입”이라며 “고교생 시절 크로스컨트리 달리기를 가르쳤을 때 자질은 보통이었지만 엄청나게 노력했고 농구를 할 때는 악바리 근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페일린 후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농구팀 코치였던 제리 러셀 씨도 11일 아칸소 주 지역방송국과 인터뷰를 했다.
“우리는 그 애를 ‘리틀 세라’라 불렀다. 보통 체격에 조용한 아이였지만 승부근성이 대단했다. 게임 종료 부저가 울리기 직전 세라가 슛을 했는데 빗나갔고 1점 차로 졌다. 세라는 얼굴을 손에 파묻고 엉엉 울었다. ‘울지 마, 이건 그냥 게임이야’라고 위로했지만 세라는 ‘알아, 하지만 우린 졌잖아’라며 울었다. 지고는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페일린 후보는 올 4월 막내아들을 낳았을 때도 출산 3일 만에 출근했다.
사실 페일린 후보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날 아이, 그리고 주지사의 임신에 대한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게 미 언론들의 보도다. 임신 3개월이 될 때까지 가족들에게도 비밀에 부쳤다.
출산 예정일을 한 달 남겨 놓고 텍사스에서 연설하던 중 양수가 터져 조기 출산을 하게 됐다. 출산으로 주지사 임무수행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출산 사흘 만에 출근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