弱달러의 경제학

  • 입력 2008년 5월 13일 02시 59분


“중국과 인도 시장에 불이 붙었어요. 요즘 아시아·태평양 시장이 매우 좋습니다.”

네트워크 장비 제작회사인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 최고경영자(CEO)는 7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이같이 밝혔다. 수출이 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시스코는 미국 내 판매가 5% 줄었지만 해외를 포함한 전체 매출은 10% 늘었다는 내용의 실적을 발표했다. 수출이 미국 매출 부진을 만회한 것이다.

○ 미국 경제의 ‘효자’로 떠오른 수출

‘주택 경기 침체, 고유가, 소비침체, 신용경색, 경기침체….’

요즘 미국에서 들리는 경제 관련 뉴스는 이처럼 좋지 않은 것 일색이다. 유일하게 좋은 뉴스가 있다면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3월 수출은 448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6%나 늘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달러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수출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수출이 급증하면서 요즘 미국에선 컨테이너 부족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미국 농산물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이를 실어나를 배가 부족해 수출업체들이 아우성이다.

이 같은 수출 호조로 수출 부문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 추가로 0.5%포인트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온다.

○ 무역적자는 줄고 있지만 휘발유 가격은 오르고…

달러화 가치의 하락은 수출 증가와 함께 큰 폭의 수입 감소를 낳고 있다. 미국이 수입하는 제품의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침체 우려로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것도 수입 감소 폭을 키우고 있다.

3월에도 수입이 2067억 달러로 전달보다 2.9% 감소했다. 이는 2001년 12월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수입 감소 덕분에 3월 무역적자는 582억 달러로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617억 달러보다 훨씬 낮았다.

달러화 가치 하락은 미국 경제에 수출 증가와 무역수지 적자 감소라는 선물을 안겨줬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게 미국의 고민이다.

달러화 가치 하락이 국제유가 폭등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 투자자금은 보통 석유 등 현물 투자에 몰리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와 국제유가는 대체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실제 유가 폭등으로 요즘 미국 주요소에선 휘발유가 갤런(3.78L)당 평균 4달러 안팎에 팔리고 있다. 미국인들이 달러화 가치 하락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이유다.

○ 흔들리는 달러 위상

달러화 가치의 끝없는 추락은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를 점차 흔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73%에서 64%로 하락했다. 반면 유로화 비중은 18%에서 25%로 높아졌다. 중동 국가와 러시아 등이 그동안 강세를 보여온 유로화 비중을 늘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치는 확고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여전히 세계 최고인 데다 미국만큼 안전한 투자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달러화 가치의 하락 행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메릴린치의 파라그 라마야 글로벌 외환 담당 부사장은 최근 주미 한국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달러화 가치가 하반기에는 상승세로 반전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달러화 가치는 미국의 신용위기와 경기침체 리스크를 반영해 실제 가치보다 평가 절하된 상태이며, 하반기에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달러화도 동반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달러당 원화 환율은 올해 말에는 달러당 930원, 내년 말에는 915원대로 안정될 것으로 관측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에만 300억 달러의 외국인 자본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온 것이 원화 약세의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메릴린치의 환율 전망
2008년 7월2008년 12월2009년 7월2009년 12월
유로당 달러1.551.481.331.28
달러당 엔1021029898
파운드당 달러1.991.871.731.68
달러당 원955930920915
달러당 위안6.856.606.606.50
자료: 메릴린치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