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공유하자” 강론에 4만 신도 열광

  • 입력 2008년 4월 19일 02시 58분


대형 야구장이 ‘1일 교회’로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7일 미국 워싱턴 남부의 내셔널스파크 스타디움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1일 교회’로 변신한 이 대형 야구장에는 4만6000여 명의 신자가 몰려 교황의 메시지를 경청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대형 야구장이 ‘1일 교회’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7일 미국 워싱턴 남부의 내셔널스파크 스타디움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1일 교회’로 변신한 이 대형 야구장에는 4만6000여 명의 신자가 몰려 교황의 메시지를 경청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 워싱턴 대규모 미사 현장

미사 시작 3시간 전부터 구름 인파… 인근 도로 마비

한국어 등 10개언어로 기도… 도밍고 마무리 열창

서서히 동이 터 오자 멀리 국회의사당 건물이 흰색 지붕을 드러냈다. 채 걷히지 않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물결은 끊임없이 야구장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17일 오전 6시 반 미국 워싱턴 남부의 대형 신축 야구장인 내셔널스파크 스타디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집전하는 대규모 미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세 시간 반가량이나 남았지만 인근 도로는 이미 미국 전역에서 몰려온 신자로 인산인해였다.

세속정치의 중심, 물질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 수도의 거리를 메운 인파가 갈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희망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내를 갖고 기다릴 것을 요구합니다.”(교황 강론 전 한 사제의 기도)

오전 9시 반 교황이 흰색 벤츠 전용차를 탄 채 스타디움에 입장하자 4만6000여 신자와 사제들의 “비바 파파(교황 만세)” 환호성으로 장내가 떠나갈 듯 했다. 대형 스크린에는 교황의 잔잔한 미소가 가득 찼다.

이날 교황 강론의 화두는 희망과 화해, 치유였다. 하루 전 81세 생일을 맞은 교황은 안경을 낀 채 앉아서 영어로 강론했다. 담담하고 나직한 음성이었지만 ‘희망’과 ‘화해’ ‘도전’ 같은 단어를 언급할 때는 강한 악센트가 느껴졌다.

교황은 “희망은 미국인들의 특성”이라고 강조한 뒤 “여러분의 조상은 새로운 자유와 기회를 찾으리란 기대 속에 이 나라에 왔지만 새로운 출발의 약속이 모든 사람에게 공유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이 겪었던 부정의(不正義)를 생각해 본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지금 교회는 조상들이 맞이했던 것보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을 맞고 있다”며 미국 가톨릭교회의 치부인 어린이 성추행 문제를 끄집어냈고 장내는 더욱 숙연해졌다. 연 사흘째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약자에 대한 성학대의 결과로 미국 교회가 겪은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그 같은 추행으로 가해진 고통과 피해를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일로 인해 미국 교회가 입은 손상도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

교황의 강론이 끝난 뒤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미국의 특성을 반영해 신자 10명이 차례로 10개 언어로 기도했다.

영어, 타갈로그어에 이어 한국어 기도에 나선 재미교포 이덕선(마태오) 얼라이드테크놀로지 회장은 “온 세상 어린이들이 건강과 좋은 가정을 지니는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이어 사제 300명이 스타디움 전체에 나눠 섰고 모든 신자가 밀떡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받아먹는 영성체가 25분간 진행됐다. 그 사이 한국어를 포함한 세계 각국어로 찬송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생명의 양식(Panis Angelicus)’을 열창하는 것으로 미사는 절정에 달했다.

1시간 50분에 걸친 미사를 마친 교황은 신자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스타디움을 떠났고 장내는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이란 글자로 물결쳤다.

교황은 이어 오후에는 워싱턴 주재 바티칸대사관 내 소성당에서 성추행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했다. 교황은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몇 분씩 나눠 만났으며 이들 중 일부는 교황 알현 도중 울음을 터뜨렸다고 교황청은 밝혔다.

내셔널스파크 스타디움(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