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황금’에 검게 물든 양심

  • 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백만장자 석유개발업자인 개리 밀비 씨(오른쪽)가 딸 에리얼의 16세 생일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밀비 씨 부녀의 초호화 파티가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뒤 밀비 씨는 횡령과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 뉴욕타임스
백만장자 석유개발업자인 개리 밀비 씨(오른쪽)가 딸 에리얼의 16세 생일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밀비 씨 부녀의 초호화 파티가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뒤 밀비 씨는 횡령과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 뉴욕타임스
美석유개발업자들 고유가로 돈방석

투자자 수익 빼돌리다 피소 잇달아

최근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은 ‘검은 황금’ 석유. 미국의 석유개발업자들은 엄청난 이득을 챙기게 됐다. 하지만 석유사업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몇 년째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면서 엄청난 이득을 챙긴 석유개발업자들이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사기 혐의로 고소 또는 고발당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미국 수사당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는 동안 석유개발 투자를 내세운 사기 혐의자들이 주마다 서로 다른 규제의 맹점을 이용해 투자자들을 울리는 금융사기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콜로라도 주의 금융사건 수사관인 프레드 조지프 씨는 “1, 2년 전까지만 해도 5건도 안 되던 석유사업 관련 수사 건수가 현재 (콜로라도 주에서만) 20건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대표적인 사례로 한때 석유재벌로 불리다가 파산한 범죄자로 전락할 위기에 빠진 석유개발업자 개리 밀비 씨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석유재벌 밀비 씨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지난해 2월 MTV에 방영된 ‘마이 슈퍼 스위트 16’. 백만장자 딸들의 16세 생일파티 현장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밀비 씨의 딸 에리얼과 친구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헬리콥터와 말이 끄는 화려한 마차를 타고 궁전처럼 생긴 텐트에 도착해 파티를 벌였다. 보석이 가득 박힌 왕관을 쓴 드레스 차림의 소녀들 앞에 화려한 여흥과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뒤이어 아버지가 준비한 고급 세단 BMW 325i가 선물로 도착했다.

아버지를 껴안은 에리얼은 “난 석유가 너무 좋아. 석유는 신발이자 자동차이고 핸드백이야”라고 외쳤다. 또 그녀가 하루 120만 배럴의 석유를 뽑아낸다는 설비를 가리키며 “루이비통(제품)을 얼마나 살 수 있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한가득”이라고 답했다.

이런 장면은 밀비 씨에게 돈을 댄 투자자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들은 “밀비 씨가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수익을 돌려주지 않으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거액을 쓰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가을 밀비 씨가 투자자 350명에게 허위 투자정보를 제공하고 1900억 달러를 뜯어낸 혐의가 있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 자료에 따르면 밀비 씨는 켄터키 주의 석유시추 사업에 참여하면 30∼50년간 매달 4800달러를 벌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밀비 씨는 2003년 한 차례 부도를 낸 뒤 몇 개 주에서 증권 발행이 금지됐고 켄터키 주에서는 석유 시추도 금지당한 상태였다.

밀비 씨는 “지금 내 처지는 교회의 쥐보다도 더 궁한 상태”라며 자금 전용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