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30년]<5·끝>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2분


한중 여객선이 오가는 항구를 중심으로 본 중국 칭다오 시내 전경. 칭다오는 8000여 한국 기업의 진출에 힘입어 급성장하고 있으며 시내에는 m2당 200만 원이 넘는 고급 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중 여객선이 오가는 항구를 중심으로 본 중국 칭다오 시내 전경. 칭다오는 8000여 한국 기업의 진출에 힘입어 급성장하고 있으며 시내에는 m2당 200만 원이 넘는 고급 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소비 눈뜨는 13억 대륙” 한국기업 작년 4549개 상륙

對中투자액 작년 71억달러… 美-日 제치고 1위

노동법 시행-稅부담에 기업 ‘야반도주’도 많아

“中정부 내수확대 정책 활용 새 시장 개척할 때”

《지난달 25일 중국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시내 샤인 주얼리(사장 설규종) 공장. 한국 기업인 이곳에서는 200여 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귀걸이 팔찌 목걸이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들여다보며 혹시 흠이 없는지 열심히 점검하고 있었다. “월급으로 대학생인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집안 살림도 돕고 있어요.” 이곳에서 5년째 일해 온 장슈제(張秀杰·23·여) 씨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내가 집안의 큰 버팀목이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개혁개방 30년과 한중 수교 16년을 맞아 한솥밥을 먹거나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급속히 늘고 있다. 최근 외국인의 중국 내 사업 환경은 예전보다 악화됐지만 한국의 중국 투자 열풍은 오히려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 누적 투자액 328억 달러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이듬해인 1979년 557만7000달러에 불과했던 한중 무역액은 1990년 28억5300만 달러, 지난해 1450억1300만 달러로 28년 만에 2만6000배 늘어났다. 집계 방식이 다른 중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양국 무역액은 1599억 달러에 이른다.

2000년 9억6000만 달러에 그쳤던 한국의 대중 투자액은 2006년 45억400만 달러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 71억8100만 달러로 급증했다. 중국에 투자하는 외국(홍콩 제외) 가운데 미국 일본을 제치고 단연 1위다. 199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누적 투자는 2만2142개(지난해 10월 현재 중국 법인 기준 4만5995개) 기업에 328억500만 달러다.

중국에 사는 한국인 역시 2000년 20만 명을 돌파한 뒤 올해 초 75만 명까지 늘었다. 내년 말이면 재중국 한국인 100만 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재중국한국인회(회장 김희철)는 예상했다.

경제뿐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양국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 준다.

○ 격감하는 특혜, 악화되는 경영 환경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장기근속자의 정년보장과 노동계약서 작성 의무화를 골자로 한 새로운 노동계약법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한국 기업들은 전에 없던 문제들을 안게 됐다. 직원 해고의 어려움은 물론 근로자마다 임금의 32.8%에 해당하는 양로 실업 공상 의료 생육 등 5대 보험에 반드시 들어야 한다.

2006년부터 가공무역 금지 품목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수출 위주의 외자기업엔 큰 부담이다. 이달 현재 중국의 가공무역 금지 품목은 1729개, 제한 품목은 2247개에 이른다. 가공무역 금지 품목을 수출하려면 제품원가의 5∼20%를 증치세(부가가치세)나 관세로 물어야 한다.

중국 정부는 최근까지 15%였던 외자기업의 소득세를 단계적으로 25%까지 올릴 예정이다. 17%인 수출증치세의 환급률은 최근 5∼11%로 낮아졌다.

이 밖에 환경규제 등 각종 규제도 잇따라 강화되면서 외자기업들은 ‘전방위 압박’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 비율이 높은 한국과 대만 홍콩 기업들의 타격이 크다.

○ 칭다오 한국기업 1곳 떠나도 5곳 늘어

지난해 7월 상하이(上海)에서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인 섬유업체 사장 등 직원이 근로자 1000여 명에게 감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생산설비를 일부 처분하자 근로자들은 회사 측이 야반도주하려는 것으로 의심한 것.

야반도주란 직원들에게 임금이나 잔업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고 몰래 철수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 기업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200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칭다오에서만 205개 한국 기업이 야반도주를 선택했다. 52개 기업은 합법적인 청산 절차를 거쳐 폐업했다.

그러나 야반도주나 철수는 주된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1990년 연간 몇백 곳에 불과했던 중국 진출 기업은 2000년대 들어 연간 1000∼2000개씩 늘었고 지난해엔 4549곳이나 늘었다.

최근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진 칭다오에서도 지난해 118개 기업이 철수했지만 이보다 5배나 많은 609개 기업이 새로 진출했다. 지난해 말 현재 칭다오에는 총 8233곳의 한국 기업이 있다.

“이제는 임가공 수출보다 내수를 뚫어야죠.”

옌타이(煙臺)에서 작업복을 생산하는 옌타이 금남무역의 배완병 사장의 말. 금남무역은 최근 중국 기업의 주문이 몰리면서 호황을 맞고 있다.

칭다오의 1000여 개 액세서리 기업은 몇 년 전부터 ‘재중국한국공예품협회’를 만들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공예품 기업은 최근 몇 달 새 직원을 30∼50% 줄이고 단순 가공은 중국 기업에 외주를 주는 등 경영구조를 개선했다.

최근 정부가 중국 진출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20%는 흑자, 30%는 현상 유지, 50%는 적자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현지 기업인들은 “적자라고 응답한 기업들도 상당수는 경영 개선을 통해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귀띔했다.

재중국한국상회 오수종 회장은 “중국의 기업 환경이 악화됐다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열악한 게 결코 아니다”며 “특히 최근엔 중국 정부가 내수 확대 정책을 펴고 있어 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北 ‘中개혁개방 따라하기’ 가능할까

신의주 행정특구 등 실패

경직된 이념체제가 걸림돌▼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북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 직후인 1991년, 북한은 중국의 선전(深(수,천))경제특구를 모방한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를 만들었다. 2002년에는 외국인을 행정장관으로 임명하는 파격을 선보이며 신의주행정특구를 창설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제도적 한계와 대외 환경 악화가 겹쳐 모두 실패로 끝났다. 시장경제적 요소를 대폭 도입한 2002년의 7·1경제관리개선조치도 성과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최근에도 북한이 새로운 개혁 조치를 준비 중인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개혁의 몸부림이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북한에서는 중국에서처럼 개혁개방의 정치이념이 탄생할 수 있는 공간이 원천 봉쇄되어 있으며 정치체계도 극도로 경직돼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북한대학원대 양문수 교수는 “북한은 국내 정치적 측면과 대외 정치적 측면의 문제점이 동시에 해소돼야만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가능하다”며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된 권한의 분산과 국정운영의 합리화, 북-미관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이후 덩샤오핑(鄧小平) 등 개혁파들이 마오의 사상재평가를 통해 개혁개방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대내외적으로도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외자 유치의 걸림돌을 없애고 화교 자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와 달리 북한은 여전히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고수하고 있으며 내부 이론투쟁도 허용하지 않는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특히 내부의 노선 전환은 대외 환경 개선보다도 한층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를 폐기해 북-미 수교를 이루고 한국 등 외부 세계의 원조를 이끌어내는 것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체제의 안정을 보장하면서도 김일성 주석의 유훈통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 노선으로 전환하는 것은 고도로 경직된 북한 체제의 특성상 매우 큰 모험이다. 66세를 넘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나이도 개혁개방의 속도를 조절하기에는 큰 부담이라는 분석도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