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외국인 혐오증’ 심상찮다

  • 입력 2007년 12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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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상원은 6일 외국인 강제 추방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최근 루마니아 출신 이민자가 이탈리아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사회적으로 위협이 되는’ 외국인을 국외로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 명령을 발표했다. 이날 표결은 이를 법제화하는 조치였다.

상원은 외국인 추방령을 발표한 로마노 프로디 총리에 대해서도 신임 투표를 실시해 160 대 158표로 신임을 가결했다. 이날 상원 표결은 이민자 문제가 총리의 사퇴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음을 보여 준다.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다. 유럽의 정상들이 유럽 통합 논의에 속도를 내는 한편으로는 이민자들에게 심리적 제도적 장벽을 높이 쌓는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이 세력을 키워 가고 있다.

▽이민 억제 내세운 정당 약진=영국 정부는 전과자들의 영국 시민권 획득을 제한하고 유럽연합(EU) 비회원국 출신 미숙련 노동자의 영국 내 취업을 금지하는 이민 억제책을 내년 초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프랑스의 경우 취업시장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10일 보도했다. 소르본대의 장프랑수아 아마디유(사회학) 교수는 2004년 파리 시내 기업들에 500통의 가짜 취업 원서를 보내는 실험을 했다. 원서의 절반에는 아랍계 응시자, 나머지 절반에는 프랑스 출신 응시자의 이름과 사진이 있었고 이력 사항은 똑같았다.

실험 결과 프랑스 출신과 아랍계 응시자의 취업 성공률은 5 대 1이었다. 그런데 2005년 10월 이민자 소요 이후 2006년 조사에서는 20 대 1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유럽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외국인 혐오증은 이민자 억제 정책을 내세운 정당들의 득표에서도 입증된다.

지난달 13일 실시된 덴마크 총선에서는 반(反)이민정책을 지지하는 덴마크인민당의 약진에 힘입어 우파 연합이 승리했다. 10월 21일 실시된 스위스 총선에서도 인종차별적 포스터로 물의를 일으킨 스위스인민당이 2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에 프랑스가 EU 의장국이 될 경우 이민자에 적대적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전 EU 차원의 이민자 적대 정책을 제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자리와 정체성 잃을까 우려=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는 최근 미국보다 유럽으로 유입되는 이민자가 더 많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강소국’으로 불리는 룩셈부르크(37.4%)와 리히텐슈타인(33.9%)은 전체 인구 가운데 외국인의 비율이 30%를 넘어섰다. 스위스도 22.9%이며 독일(12.3%)과 프랑스(10.7%)도 두 자릿수다.

이 때문에 경제 사정이 악화될 경우 이민자에게 자신의 일자리와 복지수당을 빼앗긴다는 박탈감이 외국인 혐오증의 주 원인으로 분석된다.

영국의 경우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의 절반가량을 폴란드 등 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한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해리스인터렉티브가 5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6개국의 16세 이상 65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영국은 ‘이민이 내 나라에 해가 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54%로 가장 높았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편집자들은 7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유럽 국가 간 경제적 장벽이 허물어질수록 개별 국가의 정체성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반이민 정서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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