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메카’ 미국에서 자본이 떠나고 있다

  • 입력 2007년 10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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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빠진 미국 증시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의 거래 직원들이 16일 고유가와 기업 실적 우려 여파로 떨어지는 주가를 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힘빠진 미국 증시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의 거래 직원들이 16일 고유가와 기업 실적 우려 여파로 떨어지는 주가를 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 8월 1630억달러 유출… 세계경제 충격

미국에서의 해외 자금 탈출(엑소더스)은 세계 각국 경제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급속한 자금 탈출이 미국 경제의 체력 저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어 이번 사태의 파장이 상당 기간 계속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 유례없는 해외자본 미국 엑소더스

미국 재무부는 16일 외국인 투자가가 8월 한 달에만 국채 회사채 주식 등 미국의 장단기 유가증권을 1630억 달러어치 순매도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1년 3월의 423억 달러 순매도 기록을 깨뜨린 사상 최고치다.

특히 장기 유가증권 거래에서도 순매도를 기록했다는 점에 국제 금융계는 주목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8월에 미국의 장기 유가증권을 693억 달러어치 팔아 치웠다. 1990년 이후 최고치다.

게다가 외국인들은 같은 기간 회사채 거래에서도 12억 달러의 순매도로 돌아섰다. 단순히 달러화 자산에 대한 외국인들의 선호도가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미국의 장기 경제 전망을 좋지 않게 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 전문가 젠스 노드비그 씨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회사채도 유출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이 동시에 진행되어 상당히 나쁜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뉴욕멜런은행의 스트래티지스트 마이클 울폴크 씨는 “일회적인 현상일 뿐 장기간 지속될 트렌드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 왜 미국을 등지나

8월에 이 같은 대규모 자본 유출이 있었던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여파가 가장 대표적인 요인이다.

이 사태에 따른 신용시장 경색과 함께 지속적인 달러화 약세, 미국 정부의 금리인하 등으로 달러화 자산에 대한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바람에 해외 투자자들이 뭉칫돈을 빼간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뉴욕 브라운 브러더스의 외환 전문가 마크 챈들러 씨는 블룸버그통신에 “또다시 이런 현상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8월은 비정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이 ‘탈(脫)미국 시장’의 선봉에 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재무부 채권 최대 보유국인 일본은 8월에 보유 채권 가운데 4%인 248억 달러어치를 팔아 보유 규모를 5856억 달러로 낮췄다. 2위 보유국인 중국도 같은 기간 보유 규모를 2.2% 줄였다. 대만은 2000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인 8.9%를 축소했다.

블룸버그는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채권을 투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 해외자본 탈미국의 파장

미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으로 초래된 해외 자본의 탈미국 현상이 지속되면 다시 미국 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도 높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해외자본의 유출이 계속되면 미국 정부는 자본의 추가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실질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저금리로 돈을 빌려 주택이나 자동차를 구매했던 미국인들의 이자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된다.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본 유출이 계속돼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는 것 역시 미국의 전반적인 구매력을 감소시키게 된다.

결국 미국 경제가 현재의 신용시장 부실을 털어내고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미국, 소비시대는 갔다

이미 미국의 소비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진단도 내려졌다. 미국은 지난 한 해에만 2조 달러어치를 수입한 글로벌 소비대국. 경제활동의 70%가 소비에 의존하고 있고 뉴욕증시도 이에 따라 움직인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16일 “미국 소비의 축제가 끝났다”며 “앞으로 미국인들은 과거처럼 마음껏 돈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과거에 해마다 제기되던 소비 감소 전망이 일종의 기우(杞憂)였다면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고 포천은 지적했다.

무엇보다 과거 풍족한 소비생활을 뒷받침해 줬던 부동산 활황세와 신용카드 사용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 ‘소비제국 종언’의 주된 근거다. 겨울을 앞두고 유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데다 9월 실업률이 4.7%로 연간 최고 수준을 나타내 고용시장 전망도 어둡다. 미시간대가 조사한 10월 소비자신뢰지수는 82로 최근 1년 중 최저치를 나타냈다.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아시아 회장도 17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07 세계지식포럼’에서 “서브프라임 문제는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미국 소비는 감소할 수밖에 없고, 결국 미국 경기의 침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산가격이 상승하면 소비가 증가하는 ‘부(富)의 효과’에 의해 미국 경제가 성장해 왔지만 이제 미국의 ‘부의 효과’는 끝났다”고 경고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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