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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9월 20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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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정오 미국 워싱턴 근교의 한 식당.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워싱턴특파원단과의 간담회를 이 질문으로 시작했다. 미국 방문 목적인 워싱턴 국립대성당 '한국 성모자 및 순교자 부조상' 설치 축복미사에 관한 설명 보다 "특파원들이 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건 아닌지"를 먼저 염려한 것이다. "인생에서 행복의 기본은 가족"이라는 설명과 함께.
한국 종교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이자 사회 원로인 정 추기경은 이날 한국 사회, 정치, 종교 전반에 대해 쏟아지는 질문들에 조심스럽게, 그러나 쉽고도 간결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최근 납골당 건설을 이유로 추기경이 탄 차에 계란을 던진 일 등 한국사회에서 권위가 무시되는 현상이 걱정스럽다는 질문에 정 추기경은 "사람은 다 결점이 있고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므로 절대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은 존재하기 어렵다"며 말을 이어갔다.
"권위는 사람이 부여하는 게 아니라 사회전체가 인정하는, 즉 민심이 천심이라 할 때 그런 민심이 부여하는 것이지요. 다만 미국에선 '법이 이렇게 되어 있다'고 하면 그걸로 끝인데 한국에선 법관 판결에 달려들기도 해요. 어디로 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국민 전체가 인정하는 마지막 권위는 있어야 하는데…그런 권위의 실종이 아쉽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누구나 인정하는 권위가 있어야 행복과 연결될 수 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게 걱정입니다."
학력 위조파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정 추기경은 "부풀려서 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며 "물론 (학력을 위조한) 본인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사회 전체가 정직한 사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물의를 빚은 종교 관련 각종 사태들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되듯이 내 종교를 위해 다른 종교에 피해를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예수님께서는 '네가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줘라'고 하셨다. 내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 이익도 생각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추기경 서임 이후 생활에 달라진 것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추기경은 교황을 보좌하는 참모이므로 교황께서 한국과 동북아 문제에 많은 걸 물어 오신다"며 "답변을 준비하면서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구나, 너무 자격이 없구나 하는 걸 실감한다. 이건 겸손이 아니다. 보잘 것 없는 답변서를 쓰면서 항상 송구스런 심정"이라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공부벌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톨릭 내 석학으로 꼽히며 저서와 번역서만 45권이다
정 추기경은 올해 아시아 2명을 포함해 전 세계 15명의 추기경으로 구성되는 교황청 감사위원이 됐다. 한 관계자는 "한국 천주교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경제 등 사회현실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는 이유에 대해 정 추기경은 "정치, 경제 문제는 가치관이 상대적이어서 절대적 의견이 존재하기 어렵다. 더 낫다는 차원이지 이것만이 옳다는 건 불가능하며 오십보백보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 절대적인 가치인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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