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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7월 3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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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날 탈레반 측은 30일 오후 4시 30분(한국 시간)을 새로운 협상이 시한으로 제시했다.
▽피랍 사태 중대 고비 맞나=탈레반은 27일 마지막 협상 시한이 지난 뒤 “협상이 진행되는 한 새로운 시한 설정은 없으며 협상이 중단되는 순간 다시 시한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당초의 엄포에 따르면 탈레반의 새로운 시한 설정은 협상 27일 이후 계속 진행되다 이날 결렬됐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탈레반 측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이날 AFP통신에 “아프간 정부가 이 문제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협상의 최대 걸림돌인 ‘한국인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문제에 대해 여전히 아프간 정부가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사로 파견된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아프간 최고위 관료들을 만나 ‘유연한 대처’를 요구하고 아프간 정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국의 협조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탈레반 측은 그동안 여러 차례 협상 시한을 연장하며 아프간 정부를 압박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이번 새로운 시한 설정도 한국 정부와 아프간 정부의 교감이 모색된 시점에서 상대의 반응을 떠보고 더욱 압박하기 위한 카드일 수 있다.
탈레반 측이 1차로 석방을 요구하는 탈레반 수감자 8명의 명단에서 미군 관할 아래 있는 수감자를 제외하고 아프간 정부가 석방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수감자들로 명단을 바꿨다며 협상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외부에 흘리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엇갈리는 요구 조건과 안 풀리는 협상 대책=탈레반 측이 인질 석방 대가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마디는 28일 탈레반 홈페이지에 게재한 인터뷰에서 “아프간 정부는 돈을 요구한다는 주장으로 우리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질-수감자 맞교환’ 외에 다른 요구는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협상에 참여한 가즈니 주 경찰 책임자는 “인질 석방 조건과 인질 몸값 등을 놓고 양측 간 의견차가 너무 커 애로가 많다”고 말해 탈레반의 요구에 여전히 ‘돈’이 포함돼 있음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탈레반 무장세력 내 몇 개 그룹이 인질들을 붙잡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를 파악해야만 나름대로 각 그룹에 따른 협상 카드를 만들 수 있지만 현재로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인질 유정화 씨는 28일 로이터통신을 통해 공개된 육성 인터뷰에서 “우리는 4명뿐”이라고 말했다. 불과 이틀 전 또 다른 인질 임현주 씨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여성 18명이 함께 있고 남자들은 다른 곳에 있다”고 밝힌 것과는 명백히 차이를 보인다.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인질들이 얼마나 건강하게 버텨줄지도 관건이다. ‘우리는 모두 아프고 위험에 처해 있다’(26일, 임 씨), ‘남성 인질 한 명만 몸이 아팠지만 건강을 회복했다’(27일, 탈레반 사령관), ‘인질 중 17명이 아픈 상태’(28일, 아마디)라는 등 얘기가 엇갈린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탈레반 자극적 심리전-한국정부 ‘돌다리 전법’▼
29일로 11일째를 맞은 한국인 피랍 사태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이 시시각각으로 언론을 통해 펼치는 심리전에 대해 한국 정부가 최대한 낮은 수준의 대응(로 키·low key)을 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탈레반 측은 29일 또 다른 여성 피랍자의 육성을 통해 “우리는 언제 살해될지 모르는 극도의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탈레반은 또 피랍자들을 매일 모처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는 ‘정보’도 흘렸다.
피랍자의 추가적인 희생을 막아야 하는 한국 정부에서 볼 때 아킬레스힘줄에 가까운 피랍자들의 건강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마디로 인질들의 석방을 원한다면 하루 속히 같은 수의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하고 적정한 몸값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정부는 외신을 통한 탈레반의 주장에 대해 “공식적인 접촉을 통해 전해지는 그들의 정확한 요구에만 대응하겠다”며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는 이번 사태가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이 탈레반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는 반면 탈레반의 움직임은 베일에 가려진 상태로 진행되고 있어 납치 세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게다가 정부로서는 국제 테러전쟁의 한복판인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인질 구출 노력이 22명의 국민을 구해 내는 것 외에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하는 처지다.
결국 정부는 협상 전략이 노출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 탈레반의 ‘도발’에 대해 최소한의 대응 외에는 함구하는 ‘로 키’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 당국자는 “탈레반에 헛된 기대감을 갖게 만들거나 우리의 협상 카드를 노출시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적행위를 하는 셈”이라며 “인질 석방의 가닥이 잡히기 전까지는 최대한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사태 해결의 진전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 특사로 아프간에 급파된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29일 아프간 대통령궁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피랍 사태 해결을 위한 아프간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카르자이 대통령은 “한국인 인질 석방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和答)했다. 하지만 이 답변은 협상의 최대 걸림돌인 한국인 인질과 탈레반 죄수의 맞교환을 수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원론적인 협조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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