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선 재미교포 신세대 현대음악가 보라 윤(27) 씨가 “여러분, 껐던 휴대전화를 다시 켠 뒤 버튼을 한번 눌러 봐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객석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전화를 꺼 달라는 평소의 안내방송과 반대였기 때문이었다. 일제히 휴대전화 켜는 소리가 들렸다.
관객들의 휴대전화가 켜지자 윤 씨의 ‘휴대전화 연주’가 시작됐다. 그가 휴대전화를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문자메시지를 하듯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자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건조한 휴대전화 버튼 소리가 윤 씨의 손을 거치면서 음악으로 재탄생한 것.
윤 씨는 최신 뮤직폰인 ‘업스테이지’를 비롯해 5개가 넘는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마치 ‘손 안의 피아노’처럼 연주했다.
‘포네이션(Phonation)’으로 이름 붙인 공연을 마친 뒤 윤 씨는 “휴대전화 버튼은 피아노 건반처럼 잘 배치돼 있어 연주하는 데 편리할 뿐 아니라 소리의 개성이 분명해 훌륭한 악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씨는 이날 휴대전화뿐 아니라 접시나 자전거 바퀴 등에서 나는 소리도 이용해 다양한 연주를 펼쳤다.
그는 ‘악기용 휴대전화’를 모두 11개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선호하는 휴대전화는 삼성전자 ‘2004 E-105’ 모델. 버튼에서 나오는 소리가 연주용으론 최적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가 이번 공연을 후원한 것도 이 점이 계기가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윤 씨에게 ‘얼마나 빨리 휴대전화 버튼을 누를 수 있느냐’고 묻자 서툰 한국말로 “한국 사람, 머리가 좋아요. 그래서 정말 빨리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소리 건축가’.
“건축가는 보이는 건물을 짓지만 저는 세상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활용해 보이지 않는 건축물을 짓고 있어요.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모든 게 음악이 될 수 있어요.”
윤 씨는 시카고에서 태어난 한인 2세로 이서카대에서 실험음악을 전공했으며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그의 ‘휴대전화 연주’는 올해 5월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도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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