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협상단 “탈레반 자세가 부드러워졌다”

  • 입력 2007년 7월 25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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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가족들24일 밤 서울 서초구 서초3동 한민족복지재단에 모인 피랍자 가족들이 TV 뉴스를 보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원대연 기자
초조한 가족들
24일 밤 서울 서초구 서초3동 한민족복지재단에 모인 피랍자 가족들이 TV 뉴스를 보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원대연 기자
《한국인 23명의 피랍 6일째인 24일 외신에선 이들의 석방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보도가 잇달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에 관한 정보가 없다며 신중한 태도로 일관했다. ‘협상에 큰 진전이 있다’는 외신 보도는 탈레반이 협상 시한으로 정한 이날 오후 11시 30분을 3시간 반 앞둔 오후 8시 무렵부터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일본 교도통신이 오후 8시경 아프가니스탄 정부 교섭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도했고 미국 CNN과 독일 DPA통신도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어 협상 시한을 불과 4분 남겨 놓은 11시 26분. 외신은 “탈레반이 한국인 8명을 풀어 줄 준비가 됐다”고 긴급히 타전했다.》

○…한국인 피랍사건이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가즈니 주의 주도인 가즈니 시 주민 1000여 명은 24일 피랍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주민들은 시가지를 행진하면서 “여성을 납치하는 행위는 이슬람 율법과 아프간 문화를 거스르는 비인간적 행위”라고 비난하고 한국인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시위 간간이 반탈레반 구호도 터져 나왔다.

탈레반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인다는 것은 탈레반 무장 세력의 활동권역에 들어있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건’ 용기의 발로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들이 시위를 벌인 것은 한국인들이 아프간에서 선교활동이 아닌 진료와 유아교육 등 봉사활동을 벌였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현지 교민 소식통은 전했다.

카불에 본부를 둔 ‘자유의 목소리’ 라디오 방송의 미르와이스 잘랄자이 프로듀서는 23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사람들은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에 큰 슬픔을 느끼면서 우리의 친구인 한국인을 납치한 탈레반의 행위를 규탄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아프간 국민은 다른 나라 사람의 딸들을 납치한 것은 이슬람 율법이 절대 허용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탈레반이 이날 오후 처음으로 돈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돈을 요구할 경우 ‘인질과 수감자 맞교환’보다는 협상의 여지가 많기 때문.

아프간 정부 측 협상단의 일원인 코와자 아마드 세데키 씨는 “이날 연락을 취해 온 탈레반 측이 한국 정부가 인질들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10만 달러를 제시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피랍자를 접촉하는 대가로 우리가 1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탈레반 세력의 소식에 정통한 아프가니스탄 통신사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는 24일 오후 7시 58분경 아프간 정부 협상단 대표인 키얄 무하마드 후세인 의원이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이 중단됐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며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AIP는 후세인 의원이 “탈레반 세력과 1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했으며 탈레반 측이 석방을 요구하는 수감자들의 명단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고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

○…탈레반 관계자와 위성전화 통신을 계속해 온 일본 교도통신은 24일 오후 8시 아프간 정부 협상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협상에 임하고 있는 탈레반 측의 자세가 부드러워졌다. 협상이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협상 타결 가능성을 알렸다. 같은 시간 미국 CNN방송도 한국인 피랍 문제에 대한 협상이 매우 낙관적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DPA통신은 오후 8시 3분 “탈레반과의 협상이 매우 긍정적이며 탈레반의 한 인사가 한국인 피랍자들과 직접 통화의 대가로 1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탈레반 지도자가 이를 알고 거절했다”고 전했다.

긍정적인 소식은 계속 이어졌다. 오후 8시 20분 일본 NHK방송은 탈레반이 “협상 중에 한국인을 살해하지 않겠다. 석방 요구 탈레반 수감자의 구체적 수를 제시했다”고 보도했고, 오후 9시 55분 AIP가 “오늘(24일) 한국인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AIP는 오후 11시 20분 “탈레반이 석방을 요구하는 8명의 탈레반 수감자 명단을 아프간 정부에 전달했다”고 전해 협상 타결의 실마리가 풀렸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정부는 24일 오후 9시를 전후해 한국인 23명에 대한 납치사건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는 외신보도가 잇따르자 아프간 무장단체와의 접촉 채널을 통해 진위를 파악하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아프간 현지에 파견된 정부 대표단과 연락을 취한 뒤 “한국인 석방 준비와 관련한 외신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낙관적 보도를 뒷받침할 징후가 없다”면서 “우리는 신중하게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고 상황을 분석하며 조속히 해결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탈레반 무장단체가 정한 시한인 이날 오후 11시 반을 넘겼지만 접촉이 이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전 창 기자 jeon@donga.com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 피랍자 가족 표정

“우리 애는 어떻게 될까.”

24일 밤 ‘피랍자 8명 석방설’이 언론에 보도되자 피랍자 가족들은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애타는 심정을 달랬다. 세 번째 연장된 협상 시한을 앞둔 이날 밤 서울 서초구 서초3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 모인 가족들의 표정에는 시시각각 안도와 긴장이 교차했다.

이르면 이날 밤 피랍자가 석방될 것 같다는 일부 외신 보도로 한순간 들뜬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정부가 이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자 가족들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

협상 마감 시간인 오후 11시 30분이 임박하자 살얼음판을 걷듯 5일을 버텨 온 가족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가족들의 표정에선 동요의 빛이 감돌았다.

가족 대표 차성민(30) 씨는 “국내외 언론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소식들을 듣고 있다. 소식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수 없다”며 “(일부 긍정적 보도가) 고무적이긴 하지만, 공식 발표를 듣기 전까지는 신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30여 명의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현지 소식을 전하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협상 마감 시간 직전 탈레반이 석방을 요구하는 탈레반 포로 8명의 명단을 아프간 정부에 전달하고, 8명의 피랍자를 풀어 줄 계획이라는 일부 외신이 나오면서 희비가 교차하기도 했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석방 대상자가 누구인지 후속 보도가 나오길 기대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결정적인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가족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비쳤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가족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보도하는 소식에 기도를 하기도 하고, 건강 이상설을 전하는 뉴스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가족들은 보도 내용에 매우 심란하다고 했고,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또 탈레반이 피랍자들과 직접 통화하는 대가로 1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보도에 술렁이기도 했다. 한 피랍자 가족은 “정부가 도와줬으면 좋겠지만, 여론이 나빠서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외교통상부에서 확인받은 바가 없고 아직 확인 과정에 있다”면서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납치된 이정란(33) 씨의 동생 이정훈(29) 씨는 “소식을 전해들은 가족들 모두 희망적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협상을 믿고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밤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에는 10여 명의 교회 관계자들이 초조하게 TV뉴스를 지켜보다 ‘탈레반 측이 일부 피랍자의 석방을 준비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자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최종 결과가 확인되지 않자 ‘조금 더 기다려 보자’며 신중한 모습으로 돌아섰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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