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뱌오, 36년만에 복권

  • 입력 2007년 7월 1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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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국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린뱌오의 밀랍상. 사진 출처 홍콩 봉황TV 인터넷사이트
베이징 국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린뱌오의 밀랍상. 사진 출처 홍콩 봉황TV 인터넷사이트
1971년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반대하는 쿠데타를 계획했다가 발각돼 옛 소련으로 망명하던 도중 몽골에서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진 린뱌오(林彪·1907∼1971)가 사후 36년 만에 사실상 명예를 회복했다.

16일 베이징(北京)의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개막한 인민해방군 창군 80주년 기념 전시회에 린뱌오의 초상화가 ‘10대 개국 원수(元帥)’로 전시되고 있다고 중국 언론이 보도했다.

그가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개국 원수로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후진타오(胡錦濤) 지도부가 린뱌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린뱌오는 ‘반(反)혁명분자’로 낙인찍혀 그동안 공개된 장소에서는 그의 초상화를 볼 수 없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군사박물관 편집연구처의 장팅위(姜廷玉) 처장은 “1997년 출간된 ‘중국군사대백과전서’에 기재된 역사적 사실에 따라 객관적인 시각과 실사구시 정신으로 린뱌오의 초상화를 다른 9명의 장군과 함께 전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907년 후베이(湖北) 성 황강(黃岡) 시 출신인 린뱌오는 1927년 중국 공산당의 난창(南昌)봉기에 참여한 뒤 항일 투쟁과 건국을 위한 해방전쟁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웠다. 이 같은 공적으로 1955년 주더(朱德) 등 10명과 함께 마오에게서 ‘원수’ 직급을 부여받았다. 이어 1958년 당 부주석, 이듬해 국방부장으로 승진했다.

1969년 중국 공산당 제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마오의 후계자로 당 규약에까지 이름이 올랐으나 최고 권력을 탈취하려다 실패했다.

중국 공산당은 1973년 8월 그를 당적에서 제명했고 1981년 1월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그를 반혁명분자의 주범으로 최종 확인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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