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든 의사들…英테러미수 용의자 8명 모두 의료인

  • 입력 2007년 7월 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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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할 의사가 어떻게 살인범이 될 수 있는가.”

지난달 29, 30일 영국에서 발생한 테러 미수 사건의 용의자 8명이 모두 의료계 종사자로 알려지면서 영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런던과 글래스고 공항에서 일어난 이번 테러 미수 사건의 용의자들이 모두 중산층 급진주의자로 ‘테러범들은 가난한 소외계층’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고 4일 보도했다. 다른 일간지들도 ‘닥터 테러’ ‘닥터 악마’ ‘국가의료서비스(NHS) 내의 테러 세포’라는 제목으로 용의자들의 의료 관련 이력을 부각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고위 관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8명 모두 미국 정부의 잠재적 테러 용의자 명단에 없었다”고 밝혔다.

▽영국 소설 즐겨 읽는 중산층 급진주의자들=지난달 30일 체포된 모하메드 아샤(26)와 아내 마르와(27)는 전형적인 중산층. 모하메드는 영국 노스스태퍼드셔 대학병원의 신경과 의사이며 마르와는 간호사로 알려졌다.

모하메드는 고향 요르단에서 알아주는 수재였다. 2004년 요르단대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웃 주민들은 “닥터 아샤는 늘 친절하고 옷차림도 말쑥했다”고 전했다. 마르와의 가족들도 “영국 소설을 즐겨 읽고 영국을 좋아하는 마르와가 테러에 관계될 리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용의자 빌랄 압둘라는 영국 아일스베리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의대를 다녔다. 친척 여럿이 케임브리지에 살고 있다.

호주에 사는 의사 모하메드 하니프(27)는 ‘모범 시민’으로 불렸다. 지프를 몰고 글래스고 공항 청사로 돌진한 칼리드 아메드는 레바논 출신 의사다. 이 밖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20대 용의자 3명도 영국에서 의사나 의과대학생으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조직 지도자는 대부분 고학력=지금까지의 고정관념과 달리 테러 조직의 지도부에는 중산층 출신의 고학력자가 많다. 9·11테러의 주범이자 알카에다의 1인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대표적.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최상류층 출신으로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사망한 팔레스타인 이슬람 조직의 리더 압둘라 아잠은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의사 출신 테러리스트는 예전에도 있었다.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알자와히리는 이집트 국적의 의사. 그의 전임자인 이맘 알셰리프도 외과 의사다. 이슬람 저항운동단체 하마스의 지도자였던 압델 아지즈 란티시는 소아과 의사였다.

스웨덴의 테러문제 전문가 망누스 란스토르프 박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테러를 주도하려면 높은 학력 수준이 필요하다.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만이 촘촘해진 각국의 안보망을 뚫고 다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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