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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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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전문가들은 최근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겨울철에 에너지 생산 공급국인 러시아가 유럽에 대해 가격 등을 놓고 으름장을 놓곤 하는 것을 빗대 말한 것이다. 양측은 추운 계절이 다가오기 전에 가격 협상을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러시아가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국가인 우크라이나나 벨로루시와의 마찰로 50차례 이상 연료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해 유럽 시민들이 엉뚱한 피해를 보았다.
러시아는 최근에는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연료 공급을 늘려 판로를 다양화해 유럽 국가들에 “사 가기 싫으면 말라”고 배짱을 부리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중간에서 에너지 공급을 좌지우지하는 러시아가 고유가로 더욱 콧대가 높아졌다. ○EU 27개국 가스 절반 러시아에 의존
유럽 에너지 안보의 최대 현안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이 사용 중인 가스의 절반은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 파이프라인을 타고 공급되는 천연가스는 선박이나 철도로 운송되는 석유와 달리 나눠서 받거나 한꺼번에 저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스 공급 국가에서 파이프라인을 잠그면 수입 국가는 당장 연료 공급이 중단된다. 가스를 액화해 운송할 수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액화시설 공사를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횡포를 더는 바라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에 고민한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달래기에 나선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EU 소속 국가들은 최근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카스피 해 인근 중앙아시아 국가를 찾아가 새로운 가스 운송 루트를 탐색하고 있다. 러시아가 카스피 해 동쪽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들 국가의 가스마저도 사들일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자원 확보를 둘러싼 경쟁에는 정치 외교적 수단이 자주 동원된다. 유럽은 러시아의 자원무기화가 노골화할 때마다 러시아에 대해 ‘파이프라인에 대한 동등한 접근권을 보장하는 에너지 헌장에 가입하라’고 요구한다.
○러, 사할린 프로젝트로 수출통로 확대
자원 부국 러시아는 동 시베리아 가스관과 사할린 프로젝트를 통해 석유와 가스 수출 통로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내년부터 사할린에서 나는 가스를 도입하고 중국도 시베리아산 석유 수입을 해마다 늘리고 있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에너지 동진(東進) 정책’의 배경에는 가스나 석유를 아시아에 많이 팔수록 유럽에 대한 가격 협상력이 높아지고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카스피 해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도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니라 고유가에 이은 자원 안보 전선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폴란드 등 러시아 주변 자원 빈국들은 중앙아시아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자원 빈국 간의 ‘남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횡포를 부리면 공동 대응하겠다는 계산이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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