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軍 피하려 머리까지 다 잘랐지만…”

  • 입력 2007년 2월 8일 20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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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끔찍한 경험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요? 나는 지금도 자주 악몽을 꿈니다. 극복이란 불가능합니다. 죽을 때까지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거지요. 나에겐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예요."

15일 미국 의회 사상 처음 열리는 '일본군 종군위안부 청문회'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인 할머니 2명과 함께 푸른 눈의 백인 할머니가 나와 증언한다.

네덜란드인으로 호주 애델레이드 시에 살고 있는 얀 루프 오헤르네 씨. 올해 84세인 그는 꽃다운 나이인 19세 때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

오헤르네 할머니는 7일 본보와 전화 인터뷰를 갖고 60여 년 전 겪었던 끔찍한 경험, 그리고 그때의 일이 그 후 자신의 삶에 어떤 고통을 남겼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종군위안부들은 대부분 한국 등 아시아 여성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 점에서 오헤른 씨의 증언은 적잖은 충격과 파장을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헤르네 씨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태어났다. 기술자인 아버지는 설탕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했다. 화목한 가정에서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하던 오헤르네 씨는 1942년 3월 자바 섬을 침략한 일본군에 의해 어머니와 함께 암바라와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3년 반 동안의 수용소 생활에 이어 1944년 종군 위안소(Comfort station)로 끌려갔다.

"여성에게 첫 성경험이 갖는 의미는 큽니다. 그 첫 경험이 강간, 그것도 종군 위안소에서의…. 그것이 내 인생에 어떤 굴욕감과 정신적 상처를 남겼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추해 보이면 더 이상 남자들이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머리를 모두 잘라냈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일본인 의사들도 강간대열에 합류했다고 한다.

지옥 같은 종군 위안소 생활 3개월 반 만에 심신이 여지없이 무너진 오헤르네 씨는 다시 일반 수용소로 옮겨졌다. 그 곳에는 같은 일을 당해 육신이 망가진 네델란드인 여성 100여 명이 수용돼 있었다. 일본군은 "만약 이 일을 밖에 나가 얘기하면 죽여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간과 폭행, 굶주림으로 점철된 수용소 생활은 일본의 패전으로 3년 반 만에 끝났다.

"종군 위안소에서 돌아온 뒤 어머니에게는 겪은 일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던 어머니는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가슴에만 담아온 상처를 1992년 결국 토해냈다. 당시 유고 내전에서 여성들이 무참히 강간당한다는 뉴스에 세계가 분노하고 TV에서는 한국의 종군위안부 피해자 3명이 공개석상에 나서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는 뉴스가 방영됐다.

그동안 몰래 보관해왔던, 자신이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 글을 우편으로 두 딸에게 보냈다. 딸들은 수기를 읽은 뒤 통곡하다 어머니를 찾아가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후 오헤르네 씨는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종군위안부 관련 행사에 참석해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고, 전쟁으로 강간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돕는 일에 여생을 바쳐왔다. 일본정부가 보상금 성격의 '아시아 여성기금'을 만들었을 때 오헤르네 씨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회복'입니다. 2년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고교생들이 일제가 저지른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더군요. 일본 정부가 엄중히 사과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의 진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한국은 방문해보지 못했다는 그는 "한국인 친구가 많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몇 달 전에도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몇 분이 우리 집을 방문했어요. 말은 서로 잘 안 통하지만 금방 교감이 되더군요."

미국 의회로부터의 청문회 증인 출석 초청은 지난주에 받았다. 워싱턴으로의 여행에 남편이 동행하느냐고 묻자 "남편은 11년 전 세상을 떠났다"며 웃는다. 오헤르네 씨는 남편 루프 씨를 종전직후 수용소에서 만났다. 그는 일제 패망 후 테러 공격으로부터 수용소를 지키기 위해 주둔한 영국군이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살다 1960년 호주로 이민했다. 이 대목에서 묻기 어려운 질문을 꺼냈다. 남편에게는 얘기를 했느냐고.

"결혼 전 말했어요. 남편은 듣기만 하더군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 후로 남편도 나도 한번도 그 얘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어요."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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