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러시아 '서먹'…'독극물' 러 전직 요원 결국 사망

  • 입력 2006년 11월 24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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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독극물에 중독된 러시아의 전직 연방보안위원회(FSB) 요원 알렉산데르 리트비넨코(43) 씨가 23일 영국 런던 병원에서 결국 사망했다. 런던 경찰청에 이어 방첩기관 MI5까지 수사에 뛰어들었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사용된 독극물이 뭔지도 아직 모른다. 의료진은 한때 제기됐던 방사성 탈륨 중독설을 배제했다.

그는 경찰 조사 때 1일 오전 런던 밀레니엄 호텔에서 친구인 전직 크레믈린 경호원 안드레이 루고보이 씨를 만났다고 진술했다. 루고보이 씨는 '블라디미르'라고 불리는 다른 러시아인과 함께 왔다. 블라디미르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왜 왔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차를 마시라고 반복해서 권하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리트비넨코 씨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됐다. 17일 상태가 악화돼 병원에 실려 갔지만 5일 만에 숨진 것이다. 경찰은 '독살 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은 불가리아에서 망명한 조르지 마르코프 씨가 1978년 런던에서 '독침 우산'에 살해된 사건을 떠올리게 하면서 충격을 줬다. 빅토르 유센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04년 대선 후보 시절 다이옥신에 중독된 사건도 거론됐다. 러시아와 동유럽의 정보기관은 베일에 감춰진 정교한 독살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의혹을 부인했다. 루고보이 씨도 23일 모스크바에서 입을 열었다. 블라디미르란 사람은 없었으며, 그 자리에 있었던 인물은 리트비넨코 씨도 아는 드미트리 코프론이란 사업가였다고 밝혔다. 런던으로 가서 조사에 응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숨진 리트비넨코 씨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FSB에서 중령까지 진급했다. 그러나 1998년 FSB가 러시아 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를 암살하려고 기도한 음모를 공개함으로써 당시 상관이었던 푸틴 FSB 위원장과 갈라섰다. 직권남용 혐의로 체포돼 9개월간 복역한 뒤 풀려나 2000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2002년 '러시아 날려버리기(Blowing up Russia)'란 책에서 다시 "1999년 300여명이 희생된 러시아 아파트 폭파사건이 실은 FSB가 조율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푸틴은 사건을 체첸 분리주의자의 소행으로 몰아 2000년 대선에서 권력을 잡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리트비넨코 씨는 푸틴 대통령의 체첸 정책을 비판하다 10월 모스크바에서 청부 살해된 '노바야 가제타' 신문 여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와 가깝게 지냈다. 최근에는 폴리트코프스카야 살해사건의 배후를 캐고 있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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