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미국을 보는 두갈래 길

  • 입력 2006년 8월 4일 03시 02분


오늘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미국대사관 앞에는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100m도 안 떨어진 세종로 사거리에서는 연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다.

미국에 대한 감정,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찬반논란이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린 적도 드물었다.

최근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펴낸 보고서에서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한미 FTA는 미국계 초국적 자본, 그리고 이들과 융합돼 있는 내국 독점자본이 노동자 및 민중과 절대 다수 국민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기 위해 펼치는 전면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대 대학가에는 이런 시각의 사회과학 서적들이 범람했다. 군사독재에 대한 분노가 민중혁명론으로 이어졌고 일부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번졌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지고 북한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난 2000년대에도 국내 최고 대학의 교수를 포함한 일부 지식인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놀랍다.

미국과의 교역에서 이익을 얻고 한미동맹으로 전쟁이 억지되는 것을 착취와 수탈, 종속으로 본다면 아무도 없는 진공 상태에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인지….

팍스아메리카나를 비난하고 ‘민족끼리’를 외치는 이념에 비해 현실은 어떤가.

이번 여름에도 많은 학생이 미국으로 영어캠프를 떠났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지 않은 사람은 교수 자리를 얻기 힘들고 변호사도 미국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몸값’이 올라간다. 기업에서도 미국 회사 경력이 있는 사람이 상한가다.

국내 교육에 대한 불만에다 유학이 주는 이점까지 더해 이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2, 3년씩 미국에서 수학하는 것이 일부 상류층을 넘어 중산층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국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은 특히 선생님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미국의 교사들은 학생의 성격과 적성에 대해 부모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으며 세심하게 돌봐준다는 것이다.

친절한 미국인에 대한 인상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 최근 미국의 묵인 아래 레바논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과 맞물리며 혼란을 일으킨다.

세계 최대의 무기 수출국이면서도 영토나 국력에서 몇십분의 1도 안 되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야누스.

기업하는 사람들의 천국이지만 분식회계가 드러난 회사는 문을 닫을 만큼 가혹하게 처벌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자본주의의 맏형.

돌아보면 로마나 대영제국 등 역사상 다른 패권 국가들도 그랬다.

당대 최고의 문명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도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은 냉정하게 짓밟았다.

미국은 우리와 1871년 신미양요로 처음 만나 6·25전쟁으로 동맹을 강화했고 이제는 경제 문화적으로도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무작정 좋아할 수는 없지만 미워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는 미국은 이미 우리에게 생존의 조건 아닌가.

‘철없는’ 자주론자들이 북한을 찬양하고 반미를 외치지만 광복 후 60여 년 동안 남북한이 걸어온 두 갈래 길은 한국이 나아갈 길을 명백히 보여 준다.

미국이 제국주의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안전과 살림살이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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