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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3월 3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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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리핀과 태국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군중이 다시 모여들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의 선거자금 의혹이 방아쇠를 당겼다. 지난해에 제출된 대통령 탄핵 결의가 부결된 뒤에도 반정부운동이 계속됐다. 군부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아로요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국회의원과 군 장교들이 줄줄이 체포됐다.
태국에서는 의회에 압도적인 다수파를 거느린 탁신 친나왓 총리에 대해 자금 의혹을 이유로 많은 군중이 연일 반대집회를 열고 있다. 탁신 총리는 총선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하고 있지만 야당은 선거를 거부하면서 총리의 사임을 요구토록 국왕에게 호소하고 있다.
마치 옛날의 ‘피플 파워(민중혁명)’ 계절이 다시 온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과거와 지금의 피플 파워에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는 달리 아로요 대통령은 선거에 의해 선출됐다는 점이다. 필리핀의 예를 보면 마르코스와 조지프 에스트라다 등 두 명의 대통령을 쫓아냈을 때와 같은 민중의 열광은 보이지 않는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주도로 열린 반정부집회에도 그다지 많은 군중이 모이지 않았다. 아로요 대통령이 인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피플 파워의 재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태국에서 야당 세력이 총선 거부에 매달리는 이유는 선거를 하면 탁신 총리가 압승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탁신 총리는 소규모 정당이 난립해 온 과거의 태국 정치를 일신해 일본의 자민당보다 더한 압도적인 일당 우위를 실현했다. 이 우위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한 방콕에 아무리 많은 군중이 모여도 탁신 총리를 축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피플 파워에 의한 정권 교체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고 있는 것이 비합법적인 수단이지만 폭력에 의한 정권 전복 가능성이다. 필리핀에서는 군중 동원에 의해 아로요 대통령을 몰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명됐기 때문에 군부 안에서 공산당과 손을 잡고 독자정권을 세우자는 구상이 생겨났다. 그것이 이번 비상사태 선포의 불씨가 됐다. 아로요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2010년까지 남아 있는 긴 임기, 필리핀 군대의 분산적인 속성을 고려하면 이런 쿠데타 계획은 앞으로도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태국에서는 군부의 동향이 중요하다. 국왕이 탁신 총리 퇴진을 재가하거나 선거에서 탁신 총리가 질 가능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태국 정치의 최대 조직세력인 군부가 탁신 총리와 긴장관계를 유지해 온 것이 문제다. 아무리 선거에 강한 총리라고 해도 군부가 등을 돌리면 정권을 지탱해 나갈 수 없다. 여야 대결이 심하면 심할수록 군의 상대적인 영향력은 커지는 구도다.
필리핀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반복된 피플 파워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이 없는 사회에서 비폭력적인 수단에 의한 정권 교체를 이루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그러나 일단 민주주의가 실현된 뒤에는 이 방법의 효용성이 크게 줄었다. 민주주의 틀 안에서 정치적 변화를 이룰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폭력에 호소하는 반정부운동과 정치적 억압의 계절이 다시 찾아올 것인가. 피플 파워 이후의 정치가 관심이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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