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 마오쩌둥 장남 ‘최후의 순간’공개…“폭격에 숨져”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6분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의 장남 안잉(岸英)의 마지막 순간이 오랫동안 ‘조선전쟁’(6·25전쟁에 대한 중국식 표현)을 연구해 온 왕톈청(王天成·73) 중국군사과학원 군사연구원에 의해 최근 공개됐다.

신랑(新浪) 등 중국 인터넷 종합검색 사이트와 주간지 싼롄성훠(三聯生活) 등 중국 언론은 이달 초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당시 17세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왕 연구원은 중공의용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彭德懷) 부인의 권유로 1980년 펑의 회고록 ‘북위 38도-펑더화이와 조선전쟁’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관련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취재를 거쳐 안잉 최후의 진상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안잉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사실은 이미 확인됐지만 최후의 순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했다.

왕 연구원은 최후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950년 11월 25일 아침이었다. 오전 9시가 막 지난 시간, 안잉은 펑더화이의 다른 참모 가오루이신(高瑞欣)과 함께 잠을 자던 산속 동굴에서 나와 사령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아침을 먹기 위해 화로 옆에서 달걀을 넣은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일부 참모가 상공의 미군 B-26기를 목격하고는 ‘빨리 뛰어’라고 외쳤다. 미군기 2대는 10여 개의 네이팜탄을 퍼부었다. 일부는 불바다가 된 사령부에서 뛰쳐나왔지만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안잉은 나오지 못했다. 안잉의 시신은 심하게 불타 있었다. 그가 차고 있던 소련제 시계를 보고서야 겨우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왕 연구원은 안잉이 숨졌을 때 겨우 28세로 신혼이었다고 전했다. 참전 당시 안잉의 신분은 극비에 부쳐졌으며 펑의 참모 겸 러시아어 통역이었다.

펑은 안잉이 전사한 사실을 즉각 베이징(北京)에 보고했지만 먼저 이를 보고받은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보고할지 말지를 고심했다. 며칠 뒤 저우는 보고서를 마오 주석에게 전달했고 마오 주석은 비서가 전달한 간단한 보고서를 3, 4분이나 보고 또 본 뒤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

“전쟁 아닌가? 희생은 있기 마련이다. 이게 무슨 대수라고.”

그러나 마오 주석은 장남의 희생을 가장 가슴 아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잉의 유해는 펑 총사령관 등 참모들의 거듭된 건의에도 불구하고 다른 무명용사와 똑같이 대우하라는 마오 주석의 지시에 따라 현재 평남 회창군 ‘중국의용군 혁명열사묘’에 안장돼 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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