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스페인, 기업 해외매각 정부가 나서 저지

  • 입력 2006년 3월 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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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금융, 철강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기간산업 분야에 대한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해 유럽 각국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세계화와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유럽 정부 차원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것. 유럽 정부는 외국기업 M&A 차단에 대해 기간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이 같은 ‘경제 애국주의’가 결국 유럽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유럽 언론이 연이어 경고하고 나섰다.

∇“먹자” vs “막자”=이탈리아 정부는 27일 지난 주말 도미니크 드빌팽 프랑스 총리가 국영 프랑스가스(GDF)와 민간 에너지업체 쉬에즈의 합병 계획을 발표한 것에 대해 유럽연합(EU) 차원의 개입을 촉구했다.

프랑스 정부의 조치는 이탈리아의 에너지 회사 에넬이 쉬에즈에 대한 적대적 M&A 의사를 밝힌 직후에 이뤄졌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라는 프랑스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GDF-쉬에즈 합병 발표는 에넬의 쉬에즈 인수 시도를 좌절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주 초에는 독일의 에너지 회사 이온이 스페인의 엔데사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하자 스페인 정부가 외국기업의 자국내 기업에 대한 M&A 규제 강화를 급히 발표했다. 나아가 스페인 기업인 가스 나투랄을 내세워 엔데사를 인수시키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 밖에 철강 분야에선 지난달 초 세계 1위인 영국의 미탈 스틸이 2위 업체인 아르슬로를 인수하겠다고 공식 선언하자 아르슬로의 지분을 가진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페인이 정부 차원에서 이를 공동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폴란드 정부는 이탈리아 우니 크레디토 은행이 자국 은행인 BPH를 인수하려 하자 이를 막으려 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펩시코는 프랑스 낙농업체 다농을 인수하려고 했으나 프랑스 정치인들의 격렬한 반대로 포기했다.

∇유럽 경제통합 가로막는 ‘경제 애국주의’=유럽 정부는 ‘보호주의’ ‘국수주의’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외국기업 M&A 차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에서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의 드빌팽 총리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 애국주의’라는 독트린을 공공연하게 내세우고 있다. 그는 “이 독트린이 ‘보호주의’ ‘국수주의’와는 다르다”면서 “기간산업을 외국에 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이 ‘경제 애국주의’를 적극적으로 내세움에 따라 EU 단일 시장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움직임은 EU가 어렵게 이뤄낸 경제 분야의 단일화 성과를 후퇴시키고 유로화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잖아도 지난해 유럽 헌법 부결 이후 단일 유럽에 대한 환상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 각국이 이런 식으로 빗장을 내걸고 외국의 접근을 막으면 ‘단일 유럽’은 영영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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