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가스 무기화하지 말라”…우크라 “인상땐 CIS탈퇴”

  • 입력 2005년 12월 2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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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가스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러시아가 새해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 가격을 5배 가까이 올리겠다고 통고하자 우크라이나는 이에 발끈해 서방국가까지 끌어들여 이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들려 하고 있다.

유리 예하누로프 우크라이나 총리는 23일 국영가스회사(나프토가스)에 “스웨덴 스톡홀름 상사중재법원 제소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예하누로프 총리는 자국에 주재하는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대사를 차례로 만나 러시아와의 중재를 부탁했다. 우크라이나의 논리는 러시아의 이번 조치가 1994년 맺어진 부다페스트 조약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

부다페스트 조약은 옛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약속한 것. 우크라이나는 가스 공급의 절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가스 가격 인상은 우크라이나의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가스 가격 인상을 강행할 경우 독립국가연합(CIS)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사까지 비치고 있다. 또 최악의 경우 자국 영토를 통과하는 가스관을 봉쇄하겠다는 ‘자폭성 위협’까지 하고 있다.

서유럽 지역은 가스 공급의 5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가스관은 우크라이나를 통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가스관을 막을 경우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도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러시아가 최근 발트 해를 경유해 독일과 직접 연결되는 북유럽 가스관 건설을 서둘러 시작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미하일 카미닌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가스 협정은 양국이 해결할 문제이며 정치쟁점화하지 말라”며 서방의 간섭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가스 무기화’가 지나치다는 비판 여론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옛 소련 국가들에 공급해 온 가스 가격을 결정하면서 사이가 나쁘거나 친(親)서방 노선으로 돌아선 국가에 대해서만 가격을 크게 올렸다.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은 내년부터 2배 이상 오른 가격에 러시아 가스를 공급받게 됐다. 반면 러시아와 관계가 밀접한 벨로루시는 올해 가격이 그대로 유지됐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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