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여성인권대사의 인권여행]<下>스리랑카

  • 입력 2005년 12월 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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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명 숨진 ‘쓰나미 열차’지난해 12월 26일 남부 휴양도시 갈을 향해 달리던 열차로 914cm의 물기둥이 덮쳤다. 열차 안에 타고 있던 800여 명의 승객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 열차는 사고 후 ‘바다의 여신’이라는 원래 이름 대신 ‘쓰나미 열차’로 불리며 사고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히카두와=정효진 기자
800명 숨진 ‘쓰나미 열차’
지난해 12월 26일 남부 휴양도시 갈을 향해 달리던 열차로 914cm의 물기둥이 덮쳤다. 열차 안에 타고 있던 800여 명의 승객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 열차는 사고 후 ‘바다의 여신’이라는 원래 이름 대신 ‘쓰나미 열차’로 불리며 사고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히카두와=정효진 기자
지진해일(쓰나미)이 할퀴고 간 스리랑카 해안가에는 야자수 대신 ‘쓰나미 무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섬나라인 스리랑카는 지진해일로 전 해안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000km가 파괴됐다. 스리랑카 정부가 올해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진해일로 인한 사망자는 3만196명, 부상자는 1만6556명에 이른다.

84만 명의 이재민은 국제기구 및 각국에서 지원한 난민 캠프 773곳에 수용됐다. 이 중 임시 가옥을 떠나 정착한 가구는 전체 이재민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아물지 않은 상처=세계 각국에서 원조가 답지했지만 수마(水魔)의 흔적을 지우지는 못했다.

강금실(康錦實·전 법무부 장관) 여성인권대사는 수도 콜롬보에서 2시간 떨어진 작은 도시 히카두와 근처의 난민촌을 찾았다. 난민촌에는 합판으로 허술하게 지은 임시 가옥과 군용 텐트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아이들은 쓰레기로 가득 차 파리 떼가 들끓는 습지에 발을 담그며 놀고 있었다. 적십자가 제공하는 식수가 채워진 검은색 식수 탱크 외에는 별다른 구호시설이 보이지 않았다.

난민촌에서 2, 3km 떨어진 곳에서 ‘쓰나미 열차’를 목격할 수 있었다. ‘바다의 여신’이라는 이름의 이 열차는 지난해 12월 26일 콜롬보를 출발해 남부 제2의 휴양도시 갈로 향하고 있었다. 종착역을 앞두고 914cm의 물기둥이 열차를 덮쳤고 800여 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었다.

▽굴레에 갇힌 스리랑카 여성=지진해일 이후 스리랑카 여성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주택 문제. 스리랑카 정부는 해안지역 이재민에게 인근 지역 국가 소유의 토지로 보상하고 있다. 하지만 스리랑카 법은 여성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아 남편이 실종되거나 사망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여성들은 토지를 보상받지 못했다.

결국 삶의 터전을 잃은 스리랑카 여성 상당수가 생계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터키 등지로 떠났다. 중동지역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스리랑카 여성은 100만 명에 이른다.

스리랑카 국가여성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중동지역에서 성폭행을 당한 스리랑카 피해 여성들이 죄책감에 자살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스리랑카에서는 남성의 혼외 성관계에 대해서는 벌금형에 그치는 반면 여성에 대해서는 사형까지 집행할 수 있다.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4명의 증인을 필요로 하는 관련법은 피해 여성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다.

강 대사는 “재난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것 같다”며 “여성이 제2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원조가 아닌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 패러다임, 여성참여개발론=아시아개발은행(ADB)은 스리랑카 지진해일 피해지역 복구 프로젝트에 여성참여개발론(gender development)을 도입했다. ADB는 스리랑카를 비롯해 네팔 파키스탄 캄보디아 등 4개국에서 진행되는 개발 프로젝트에 여성 전문가를 매니저로 포함시키는 강제 조항을 만들었다.

ADB 스리랑카 사무소장 알렉산드로 피오 씨는 “지진해일 이후 지역개발 사업에 여성 참여를 쿼터제로 할당하고 직업교육 등을 통해 여성 스스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콜롬보=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여성운동가들조차 납치-폭행 당해”▼

전 세계 여성 인권 옹호자 250여 명이 참가한 ‘여성 인권 옹호자 국제회의’가 지난달 29일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1998년 ‘유엔 인권 옹호자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Human Rights Defenders)’ 10주년을 앞두고 선언의 이행 상황을 평가하기 위해 열렸다.

‘유엔 인권 옹호자에 관한 선언’은 인권 옹호자들이 활동 과정에서 납치 협박 폭행 등 인권 침해를 당할 경우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국제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회의에서 만난 일본인 루미코 리시노 씨는 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루미코 씨는 극우세력의 연이은 협박에 6개월 전부터 집에 가지 못하고 동료들과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히나 질라니(파키스탄) 씨는 “국제사회에서 ‘인권’과 ‘여성 인권’은 별개로 다뤄지고 있어 여성 인권 옹호자들의 활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유일의 여성인권대사로 회의에 참석한 강금실 대사는 “여성 인권 옹호자 스스로 인권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며 “여성 인권 옹호자들이 근원적인 폭력에 대해 단순한 저항이 아닌 자기 성찰적 접근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콜롬보=정효진 기자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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