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연정국면 돌입…제3당 자민당 ‘킹메이커’ 부상

  • 입력 2005년 9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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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이 치러진 18일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베를린 시내 중심의 포츠담 광장으로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광장의 소니센터 안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렸다. 집권 사회민주당이 열세를 극복하고 선전한 것으로 나타나자 일부 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득의만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예상보다 저조한 득표에 그친 기독민주연합의 앙겔라 메르켈 당수는 썩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가장 환한 모습으로 화면에 등장한 사람은 구이도 베스터벨레 자유민주당(FDP) 당수였다. 출구조사 결과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10.5%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시민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 요나스 뵈르너 씨는 “이렇게까지 선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득표율은 9.8%로 집계됐지만 독일 언론들은 한결같이 이번 총선의 최대 승자로 자민당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유권자의 의중을 헤아려 경제정책에만 집중한 자민당의 전략이 먹혀들었다고 분석했다. 자민당은 세금을 감면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단순한 구호를 앞세워 유권자들을 공략했다.

자민당의 선전은 경제 침체와 두 자릿수 실업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도 해석됐다. 거리 군데군데 내걸린 슈뢰더 총리의 대형 사진이 찢어지거나 낙서로 훼손돼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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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을 제치고 제3당의 위상을 회복한 자민당은 일약 차기 정권을 결정짓는 ‘킹메이커’로 부상했다. 슈뢰더 총리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좌파연합을 제외한 어느 당과도 협상하겠다”며 반대 진영으로 분류되던 자민당에 은근히 ‘러브콜’을 보냈다. 사민당(적)-녹색당(녹) 연정에 자민당(황)을 끌어들여 적-녹-황의 이른바 ‘신호등 연정’을 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스터벨레 당수는 “사민당과 연정을 하느니 야당으로 남겠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독일 정치권은 이제 또다시 연정 실험에 나설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형태는 사민당과 기민련―기독사회연합이 손잡는 ‘대연정’이다. 대연정 시절이던 1966년부터 3년간 독일이 경제 외교 등 전 분야에 걸쳐 도약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

전문가들도 현재로선 대연정의 가능성을 가장 높게 점치고 있다. 기민련이 좀 더 친기업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슈인 경제개혁의 큰 그림에 대해선 양쪽의 입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뢰더 총리와 메르켈 당수 모두 ‘자신이 총리가 되는 것을 전제로 한 대연정에만 동의’하는 입장이라 협상이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이 밖에 △기민련―기사련(흑)이 기존의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 외에 녹색당까지 끌어들이는 흑-황-녹 연정 △사민당-녹색당에 좌파연합이 가세하는 적-적-녹 연정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야 어느 쪽이든 연정 협상을 통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게 되면 연정의 총리 후보가 대통령에 의해 총리 후보로 내정되고 의회가 총리를 선출한다.

총선은 끝났지만 총리 자리를 놓고 새로운 경쟁이 시작됐다. 최종 승자를 가려내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베를린=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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