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서 드러난 존 로버츠 美 대법원장 내정자 성향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2분


코멘트
“보수주의자다. 그러나 앤터닌 스캘리아(강경 보수) 대법관과는 다르다.”

워싱턴포스트는 15일 미국 상원이 청문 절차를 진행 중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 내정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로버츠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낙태를 비롯해 민감한 쟁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 대신 원칙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비켜 갔다.

의원들은 그의 대답이 애매하다고 못마땅해 하면서도 인준 통과는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청문회는 15일로 4일간의 일정을 마칠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원회 투표는 22일, 본회의 투표는 26일로 예정돼 있다. 인준이 통과되면 로버츠 내정자는 다음 달 3일 미국의 17대 대법원장으로 종신 임기를 시작한다.

▽낙태 문제=로버츠 내정자는 헌법에 없는 낙태권을 처음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결정에 대해 ‘확립된 선례는 존중한다’는 말로 논쟁을 피해 갔다. 분명한 예스(Yes)는 아니다. 로버츠 내정자는 1989∼93년 조지 부시 행정부의 법무부 송무담당 부장관으로 근무할 때 ‘로 대 웨이드 결정은 뒤집어야 한다’는 행정부 문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권은 1992년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 결정에서도 다시 인정됐다. 당시 결정은 로 대 웨이드 결정(7 대 2)과는 달리 몇 대 몇으로 단정할 수 없는 복잡한 결정 이유가 제시됐지만 대법관 2명 정도가 낙태 반대로 의견을 바꾼다면 선례가 뒤집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많은 의원의 우려는 여기에 있다.

▽인종차별 문제=로버츠 내정자는 1981∼82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법무장관 참모로 일할 때 의회의 투표권법 적용 범위 확대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5년 제정된 ‘투표권법’은 주 정부가 문맹 등을 구실로 투표권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해 흑인 투표권을 확대한 법이었다. 그는 “나는 그때 26세의 참모 변호사에 불과했고, 행정부의 정책 결정에 관여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1960년대 민권 관련 법 제정 초기에 흑인을 비롯해 소수인종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들, 예를 들면 ‘흑인 할당제’나 ‘소수자 우대조치’ 등이 민주주의 원칙과 일치하지 않고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분립=1995∼2003년 의회가 제정한 법률 중 33개를 대법원이 위헌으로 결정했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대법관의 논리가 의원들의 논리보다 우수하다는 것이냐”며 비판론을 제기했다. 로버츠 내정자는 이에 “법원이 의회의 선생이 돼서는 안 된다”며 “법원의 선생은 헌법이고, 의회의 선생도 헌법이다”고 말했다. 잘 알려진 그의 재치를 보여 주는 답변이었다.

▽리더십=동성애 안락사 사형제폐지 정교(政敎)분리 등 민감한 쟁점에 대한 대법원 결정이 5 대 4로 근소하게 갈리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의원들은 가능한 한 포괄적 합의의 도출을 요구했고 그는 “대법원장이 된다면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