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터키영사관 도청…美주재 외국공관 도청사실 드러나

  • 입력 2005년 8월 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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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시카고 주재 터키영사관을 도청하는 과정에서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 의장에 대한 터키인들의 로비용 선거자금 제공 의혹이 포착됐다고 월간지 배니티 페어 9월호가 보도했다.

이 잡지는 터키영사관에 대한 FBI의 감청이 불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FBI나 중앙정보국(CIA)이 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도청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도청 사실은 FBI에서 여성 통역요원으로 근무하다 2002년 ‘직무상 취득한 기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이벌 에드먼즈 씨가 이 잡지에 제보함으로써 공개됐다.

잡지에 따르면 FBI는 1990년대 말부터 터키인들의 비밀활동을 조사해 왔으며 주로 도청을 통해 터키인들이 워싱턴과 시카고의 유력 정치인들을 매수하기 위해 시도한 증거들을 찾아냈다.

에드먼즈 씨는 도청 대상자들인 터키협회와 영사관 직원들이 해스터트 의장과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내용이 포착됐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수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구체적으로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200달러 이하의 소액수표로 나눠 해스터트 의장에게 제공했다는 것.

터키인들이 해스터트 의장에게 거액의 자금을 제공한 것은 미 의회의 대(對)터키 결의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잡지는 추정했다. 결의안은 1915∼1923년 터키에서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규탄하는 내용.

해스터트 의장은 2000년 8월 결의안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나 2개월 뒤 하원 전체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입장을 바꿔 결의안을 철회시켰다. 해스터트 의장은 돌연 입장을 바꾼 데 대해 “결의안이 미국의 이익을 해치게 될 것을 우려한다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도청테이프에는 ‘해스터트 의장의 결의안 철회 대가로 최소한 5만 달러는 들어 갔다’는 터키영사관 관계자의 증언이 들어 있다고 잡지는 전했다. 에드먼즈 씨는 해고가 부당하다며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고, 대법원에도 탄원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도청 문제가 외교 문제로 비화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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